[인터넷 이디엄] <59>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잡놈(잡것)’의 줄임말.

 알려지지 않거나 인기가 없는 사람이나 회사, 제품 등을 비하해 일컫는 말이다. ‘무명(無名)’과 비슷한 의미지만 상대방을 깔보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반대말은 인터넷에서 널리 알려진 사람을 뜻하는 ‘네임드’(named)다.

 전문성과 지식이 검증되지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인터넷 논쟁에 끼어들거나 엉뚱한 주장을 하면, “왠 듣보잡이 설치냐?”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맘에 들지 않는 기업이나 사람에 대해선 무조건 ‘듣보잡’이라 몰아붙이기도 한다.

 2009년 진중권이 보수 논객 변희재와 논쟁하며 그를 ‘변듣보’라 비아냥댄 것이 대표적. 진중권은 변희재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나름 ‘네임드’ 논객들의 ‘듣보잡’급 싸움이었단 평가다.

 걸그룹 카라의 한승연은 1집 활동이 성과 없이 끝난 후 온갖 소소한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며 궂은 일 마다않고 열심히 활동, 생계형 아이돌 이미지를 얻었다. 이때 생긴 별명이 ‘한듣보’. 지금의 카라 위상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엔하위키에 따르면, 이 표현은 디씨인사이드 회원들이 대학 서열에 대해 논쟁하며 일부 대학들을 ‘듣도 보도 못한 잡대학’, 즉 ‘듣보잡대’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유사 표현으로 ‘지방 잡스러운 대학’의 줄임말 ‘지잡대’가 있다.

 소개팅한 남자가 ‘키 작고 못 생기고 매사추세츠 공대라는 지잡대 나온 주제에 자부심 쩔더라’는 어떤 여성의 미니홈피 글이 화제가 된 후 MIT도 ‘지잡대’로 분류된다.

 ‘듣보잡’이나 ‘지잡대’는 내실보단 이름값을 다투며 ‘스펙’이 떨어지는 사람은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름보단 실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기본 원리. 타인을 무시하는 ‘듣보잡’ 같은 표현은 자제하면 어떨까?

 

 * 생활 속 한마디

 A: 그분은 깨끗하고, 능력있고, 바른 말 잘 하니까 정계 진출해도 잘 하실 거예요.

 B: 하지만 정치계에선 듣보잡인데 괜찮을까요?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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