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TV가 여러 대다. 식구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있고, PC모니터와 노트북PC와 거실용 TV가 있다. 스마트폰은 이동 중에 유용하고, PC는 식구들과 실랑이하지 않고 나만의 프로그램을 즐기기에 좋다. 영화나 명품 다큐멘터리는 거실 TV의 큰 화면으로 봐야 제격이다.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쓰임새도 제각각이다.
방송사와 통신사들은 경쟁적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TV가 더 긴밀하게 연결하는 ‘엔(N)-스크린’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TV로 보던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으로 이어서 보거나, TV를 보면서 태블릿PC로 부가정보를 참고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PC와 인터넷은 하루가 다를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했다. 1980년대 중반 XT컴퓨터는 하드디스크조차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쇼핑, 예약, 금융거래를 비롯해 못하는 것이 없다. 이에 비하면 TV의 변화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액자처럼 얇아지고 이전보다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방송 시청용일 뿐이다.
그럼에도 PC를 장악한 기업들은 TV를 탐낸다.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미국의 케이블TV 방송사인 컴캐스트에 10억달러를 투자한 것만 봐도 그렇다. MS는 컴캐스트의 셋톱박스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정보기술(IT)기업들이 TV를 탐내는 이유는 명백하다.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중심인 거실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원만 켜면 즐길 수 있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매체다. 홈 네트워킹이나 미디어 허브로서 TV의 쓰임새가 매우 유용하다.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모빌리티 인수가 화제다. 스마트폰 운용체계(OS)를 가지고 있는 구글이 단말기 제조업체를 인수한 것이다. 국내 가전회사들이 “구글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자체 OS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그러나 모토로라가 최대 셋톱박스 제조업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는 것 같다.
구글TV의 부진을 경험한 구글에게 셋톱박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토로라가 중요한 전술도구가 될 수 있다. 콘텐츠 확보에 애를 먹었던 구글은 셋톱박스를 매개로 해 유료방송 사업자들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PC와 스마트폰, TV까지 장악한 거대기업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스마트폰과 PC모니터가 화면(스크린) 크기만 다른 TV다. 더 이상 방송통신 융합에 대비한 법제 정비를 미뤄서는 안 된다. 지상파 재전송,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종편 채널 등 끌어온 문제들로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국내 방송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양유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yooyang@kc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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