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 달빛이 유난히 좋은 밤, 추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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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일만 지나면 추석 연휴다. ‘추석(秋夕)’은 가을의 한가운데 날로 우리나라 으뜸 명절이다. 추석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좀 더 정확히 말해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추석을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부른다. 동그란 보름달이 떠올라 유난히 밝은 음력 8월 보름이 바로 추석날이다.

 지구는 태양을 일정한 주기로 공전하고, 또 훨씬 짧은 주기로 자전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 역시 주기적으로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천연위성(天然衛星)이다. 달은 평균 29.53059일을 주기로 차고 기운다. 이런 달의 운동을 기초로 시간 단위를 규정한 것이 음력(陰曆)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음력을 사용하다 1896년부터 고종 조칙에 의해 태양력을 쓰게 된다.

 주기적인 자연 운동을 1년이나 하루의 시간 단위로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 불변의 자연 법칙처럼 보이는 시간도 음식이나 관습처럼 사회 문화·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과거 왕조시대, 새 군주가 등극하면 자신만의 연호를 사용했다. 1790년대 프랑스혁명 지도부는 공화국 건국일인 9월 22일을 1월 1일로 규정했다. 1주일도 7일이 아닌 10일로 하고 한 달은 3주, 즉 30일로 통일했다. 이런 시간 기준이 13년간이나 사용됐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개념은 정보기술 시대에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는다’는 말로 정보기술의 빠른 발전상을 표현한다. 과거에는 해가 뜨면 일하고 날이 어두워져 달이 보이면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순간이 곧 해가 뜬 시각이다. 컴퓨터를 부팅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24시간 돌아가는 회사 서버와 휴대폰 문자보관함에는 한밤중에도 업무 관련 메일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결과, 현대인은 평균 3분마다 정보기기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받는다. 그 결과, 정보기기에서 몇 분만 떨어져도 참지 못하는 ‘초미세 지루함(micro boredom)’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영국신경정신과학연구소는 이런 지속적인 신호와 훼방이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보다 정신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논문 중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시간 관리다.

 우리는 이제 컴퓨터와 휴대폰이 알려주는 신호에 따라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며 생활한다. 해가 떴는지, 달이 떴는지는 현대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신에 컴퓨터와 휴대폰이 우리 생활의 중심이자 기준이 됐다. 더 이상 해가 뜨건 달이 지건 상관없다.

 언제부턴가 세상에서 달이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이 소설 속 단골 메뉴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너무 바빠 하늘 본 적도 오래다. 언제 달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주변 모두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노랫말에 ‘금시초문’이라며 그 누구도 눈부신 달빛을 기억하지 못한다. 달이 없으니, 추석 명절 역시 사라졌다.

 그러나 달이 정말로 하늘에서 사라진다면 지구는 일대 혼란 그 자체다. 달은 지구 공전궤도와 자전주기는 물론이고 밀물과 썰물을 불러오는 기조력(起潮力)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달이 사라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달은 언제나 그저 그대로 존재한다. 문명에 병든 사람들만이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이다. 만약 달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하늘에 뜨는 달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 달이다. 올 추석에도 하늘에 달은 휘영청 떠오른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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