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날개 한번 달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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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지난 몇 년 우리는 ‘한국 IT의 추락’이란 표현에 익숙해져 버렸다. 글로벌에서의 한국 IT지표 하락을 접할 때마다 이 표현을 수용했다.

 다시 되돌아보자. 과연 한국 IT가 추락할 수 있는 그만큼의 위치에 올라 본 적이나 있었는지.

 분명 한국은 IT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올라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정상은 누군가가 날아올라 ‘금광’을 확인하고, 개척해 닦아 놓은 길의 끝자락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 길을 빠르게 달려, 먼저 도착한 이들과 함께 금을 나눠 캤을 뿐이다.

 우리가 추락이라고 표현하는 지금의 한국 IT 상황은 엄밀히 말하면 그 정상에서의 ‘실족’인 셈이다. 한국 IT산업은 벼랑 끝에서 실족해 끝없이 곤두박질치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현실을 깨달은 것은 저 멀리 산봉우리의 새로운 금맥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를 발견하면서다. 다시 비상하려해도 우리에겐 날개가 없었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가 제시한 ‘몰락의 5단계’는 기업뿐 아니라 산업 흥망성쇠를 진단하는데도 유용하다.

 그가 제시한 몰락 1단계는 ‘성공을 당연시하고 진정한 성공의 근본요인을 잊을 때’다. 우리 정부가 한국 IT산업이 세계 정상에 도달했다고 낙관하고, 정책적 추진 주체를 분산시킨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2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것’이다. 우리가 IT산업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트렌드 따라잡기에 소홀하면서, IT를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만 치부해 무리하게 타 산업에 흡수시킨 과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3단계로 콜린스는 ‘위험 가능성과 위기 경고를 부정하는 것’을 꼽았다. 글로벌 IT지표의 하락을 간과하고 국제사회의 ‘IT강국 코리아’ 인사치레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상황이 이 단계다.

 4단계는 ‘팩트(사실)에 근거한 대화가 사라지는 상황’, 그리고 몰락의 마지막인 5단계는 ‘생명력을 다하는 최종 단계’다.

 ‘실족’한 한국 IT의 현 상황은 4단계 중반쯤에 도달해 있다. 다행히 기업과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팩트에 근거한 아픈 지적들이 쏟아지고 있고 정부도 이 목소리에 귀를 열기 시작했다.

 다시 ‘한국 IT의 추락’을 이야기해보자. 부연하면 날개가 없는 우리는 아직 추락을 염려할 단계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남들이 새롭게 발견한 정상의 금광에서 남들과 함께 금을 캐려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가 그렇게 다시 오를 정상에서 ‘실족’이 아닌 ‘추락’이라는 것을 해보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추락을 막기 위해서도 날개가 필요하다. 정상도 이미 경험해본 우리다. 추락해도 좋으니 이젠 우리도 날개 한번 달아봤으면 좋겠다.


 심규호 국제부장 khs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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