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 좋은 정책은 오락가락 갈지(之)자 행보다.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 방향을 논의한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정책 일관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하반기 경제는 박 장관이 내세운 `일관성`을 추구하기엔 도처가 딜레마 상황이다. 올 상반기까지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나섰던 정부는 일단 하반기 경제운용에선 물가에 다소 무게를 싣는 분위기이긴 하다.
정부는 오는 30일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4%대 고공행진 중인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고, 주요 품목에 대해선 구체적인 억제 방안도 제시할 예정이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주 말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정과제토론회를 전후해 서민 체감경기 증대를 위한 `내수기반 강화`를 물가안정에 버금가는 정책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수경기 부양은 곧 물가상승 요인이라는 상충관계를 가진다.
정부는 이달 말 중소기업과 재래시장은 물론 관광ㆍ레저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미시적 내수시장 대책을 쏟아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수 살리기는 수요 차원이 아니라 공급 차원의 대책, 중장기 체질 개선에 무게중심이 있다"며 "경기부양이라는 표현 자체를 쓰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서민생활 안정`과 `포퓰리즘 방어`도 일면 상충되는 정책 목표다. 중산층ㆍ서민의 가처분 소득을 늘릴 뾰족한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체감경기를 개선하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가 불가피하다.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 방향에도 근로장려세제(EITC)와 소득공제 확대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포퓰리즘 방어에 전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 장관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확대하되 재정이 지속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도 절충점도 모호한 대목이다.
또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는 내수뿐 아니라 전체 경제성장과도 동시에 추구하기가 어렵다.
정부는 `3%대 물가, 5% 내외 성장`이라는 연초 거시경제 목표 중 물가는 다소 높여 잡을 전망이지만 성장 목표에 대해선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최근 정부는 내수, 중소기업 대책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수출 대기업도 `상대적 호황`조차 지속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단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미국 경기도 `소프트 패치` 가능성이 높아 수출경기 위축이 염려된다. 국내적으로도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 하락을 용인하고 있고, 기준금리는 하반기에도 몇 차례 더 올릴 것으로 보여 수출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결국 원화 강세, 국제유가 상승으로 상품수지 흑자 폭이 축소되고, 서비스수지 적자 폭은 확대돼 하반기 이후 내년까지 경상수지 흑자 폭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정책 수단이 물가쪽으로 쏠리면서 성장을 위한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는 게 딜레마"라며 "성장을 위해선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 부담을 낮춰야 하는데 선거철이 다가오니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 신헌철 기자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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