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리니언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유소 나눠먹기’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4대 정유사에 과징금 4348억원을 부과했다. 지난 2009년 6개 액화천연가스(LPG) 업체의 가격 담합에 부과한 6689억원에 이어 공정위 역사상 두 번째 큰 액수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건 적발에 특정 정유업체의 자진신고가 큰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다. 이른바 ‘리니언시(leniency)’, 즉 자진신고자감면제가 제대로 작동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리니언시란 사전적으로 ‘관대’ ‘관용’ ‘자비’라는 의미다. 기업이 담합이나 카르텔 등 공동행위를 자진 신고했을 때 해당 기업에 과징금을 완전 면제하거나 경감시켜 주는 제도다.

 기업간 담합이나 카르텔은 그 특성상 내부자 고발이나 담합행위를 한 기업의 협조가 없이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 때문에 각국은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해 담합행위를 적발하고 있다.

 미국이 1997~2004년 동안 담합 기업체에 부과한 총 20억달러의 벌금액 중 90%가 이 제도를 통해 적발되고 부과된 것이다. 유럽연합은 1996년 도입하여 2006년 이후 이 제도를 통해 해마다 40여 건씩 담합을 적발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 도입해 2005년부터 2008년 6월까지 이 제도를 통해 적발한 담합사건은 35.4%, 부과된 과징금은 65.8%다. 1순위 자진신고자에게 과징금 100% 면제, 2순위에게 50%를 감면해준다.

 리니언시는 ‘죄수의 딜레마’를 잘 활용한 사례다. 두 공범자가 서로 협력해 범죄사실을 숨기면 증거 불충분으로 형량이 낮아지는 최선의 결과를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먼저 죄를 자백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죄를 고변하게 되는 현상이다.

 공정위는 앞으로 담합 사건을 조사하는데 리니언시 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리니언시는 담합 결과를 밝혀내는데도 효과가 있지만 기업이 서로 상대방을 불신하게 돼 담합시도를 꺼려해 담합행위를 사전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업엔 ‘배신자’를 만들어내는 제도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꽤 괜찮은 제도다.

 권상희 미래정책팀장 shkwon@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