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강진 이후 한국 대표 기업을 바라보는 일본 재계 시각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벤치마킹과 경계 대상이었던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최근 실적 한계론이나 신규 사업 부진론을 비롯해 "일본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취약한 구조를 노출했고, 중국 기업에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늘고 있다. 반면 일본차에 비해 한수 아래로 평가했던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탁월한 상품 개발 능력과 엔진ㆍ연비 향상을 평가하며 "북미ㆍ신흥 시장 성공 신화를 토대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 4강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시가 도시유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현대자동차에 대해 "환율 경쟁력에만 의존한다는 과거 평가가 사라졌고 상품 개발이나 신차 투입 속도도 매우 빠르다"며 일본차 업체들의 최대 라이벌로 급성장했다고 평가했다.
혼다자동차가 현대차 신형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를 분석한 뒤 최근 생산한 시빅 신규 모델에 참고했을 정도라고 아사히신문은 소개했다.
일본 1위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도 북미 시장 영업망을 최근 재편하면서 "현대차를 능가하는 현지 생산과 비용 삭감 구조를 달성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설정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현대차 위상이 부쩍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자동차신문은 "5년 전만 해도 현대차는 일본에서 춘투(봄철 노동쟁의) 과정 때 이름이 잠깐 언급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일본차 빅3의 라이벌 회사로 급성장했다"고 보도했다. 리먼브러더스 쇼크, 동일본 강진 등 위기 국면에서 일본차 업체들 생산능력이 대폭 위축됐지만 현대차는 외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제시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다른 회사들과 달리 현대차는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며 "최근 3개월 연속으로 전년 실적을 상회하는 약진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반면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부정적 견해가 부쩍 늘어나고 있어 대조를 이뤘다.
후지산케이신문은 최근 기사에서 "삼성전자의 쾌속 진격을 막으려는 글로벌 포위망이 강해지고 있다"며 "최근 10년 동안 이뤘던 실적 약진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업체에 대한 추종(catch up)에서 신규 시장 창조로 경영 방침을 전환했지만 최근 5년간 수익은 대부분 기존 사업에서 창출되고 있을 뿐"이라며 신수종 사업 실적이 부진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액정패널이나 슬림형 TV 등 주력 사업에서는 빠르게 추격하는 중국 기업들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일본 기업들이 삼성전자에 추월당했던 것처럼 삼성전자도 정상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사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최신호에서 "삼성전자가 LCD 사업에서 2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고 상기시킨 뒤 "막강한 영업력을 자랑했던 삼성전자의 부문별 적자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며 패널 증산을 통한 공격적인 승부 전략이 성공할지도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완제품 부문에서는 여전히 강하지만 동일본 강진 이후 소재ㆍ부품은 일본산 의존도가 높은 취약한 생산 구조가 노출됐다"고 평가했다. 액정TV에서는 세계 톱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성능 필름 등 주요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어 일본 동북부 지역 생산 차질로 삼성전자 조업도 큰 차질을 빚는 등 취약점이 노출됐다는 설명이다.
게이단렌 회장을 역임했던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도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리딩 기업이 된 만큼 스스로 시장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며 "앞으로 5년이 회사 성장에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 채수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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