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농협 관료주의

 농협은 고객들에게 스스로를 ‘민족은행’ ‘광복동이 금융기관’이라는 표현을 쓰며 자랑한다.

 한국전쟁 폐허더미 위에 민족의 뿌리인 농업을 부흥시켜 국가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취지로 지금의 광복절인 1961년 8월 15일 설립됐으니,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

 농민을 조합원으로 면·군·시에 단위농협, 군·시·도에 지부, 중앙에 농협중앙회를 둔 전국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고, 작년 말 은행부문 예수금만 115조원, 영업수익이 20조원에 달하는 굴지의 금융기관으로 컸다.

 40년만의 성장으론 국민의 절대적 ‘신뢰’가 없었다면 가늠하기도 힘든 경지다. 이런 농협이 몇 개의 ‘컴퓨터 명령어’ 실행 앞에 일주일간이나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한겨울 파종까지 끝내고 종자값과 비료비를 뺀 고작 수백만원을 맡겼다가 모종 값으로 돈을 찾으려하니 그 금융기관이 원인도 모른 채 일주일 동안이나 허둥대고 있다. 농축업민·도시 서민의 금융거래가 사실상 ‘올스톱’이다. 이런 상황에 빠진 농협이 며칠 전 몇몇 최고경영자들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까진 보였으나 아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이나 농민들은 우리나라 단일 최대 조직인 농협이 자기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금융권은 물론 산업계에선 모두 아는 상식이다. 이런 ‘안일함’은 40년째 익은 관료주의와 맞아떨어졌다.

 농협정치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웃나라 일본에도 농협이 있었고, 얼마나 중앙정치에 대한 폐해가 컸던지 지난한 정치 개혁을 통해 지금은 뿌리 뽑았다고 한다.

 이번 농협사태의 진앙지는 성장과 이익 뒤편에 가려진 ‘방심’과 ‘무관심’이다. 쌓인 문제점을 얘기하고, 해법을 찾아햐 할 기자회견 자리에 사건 발생 보고조차 받지 못한 회장이 나와 해명하는 것도 우습다. 실무자조차 자기책임으로 여기지 않고 아웃소싱 업체 책임으로 포장하는 현실, 바로 농협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농협은 국민금융으로 성장하는 것보다는 농협 그 자체의 성장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던 것이다.

 이진호 정책담당 차장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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