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3개 금융회사가 최근 개정된 상법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 관련 법령에 따라 이미 `준법감시인`을 두고 있는데, 이름도 비슷한 데다 사실상 똑같은 업무를 맡게 될 `준법지원인`을 이중으로 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준법감시인 제도는 일종의 내부통제 또는 위험관리 시스템으로 금융당국이 2000년에 도입했다. 법규를 잘 알고 있고 독립성을 가진 준법감시인을 둬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 기준 준수 여부를 감시하려는 취지다.
각종 규정이나 절차 법규 등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불공정 행위는 없었는지를 점검해 감사위원회에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금융당국의 의지로 10여 년 시행기간을 거치며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3월 상법 개정으로 난데없이 등장한 준법지원인이다. 개정 상법은 모든 상장회사가 준법 통제기준 준수에 관한 업무를 담당할 준법지원인을 1인 이상 두도록 했다.
이미 준법감시인을 두고 있는 금융회사로서는 좋게 봐도 불필요한 `옥상옥`이다. 나아가 내부통제 시스템 혼란을 유발해 그동안 정착돼 가던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여지도 있다.
당초 노철래 의원(미래희망연대)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부칙을 통해 이미 준법감시인이 있는 회사는 준법지원인을 별도로 두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부칙이 빠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법무부가 법조인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누락시킨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한 증권사 감사는 "부칙이 사라지는 바람에 준법감시인을 준법지원인으로도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며 "별도로 준법지원인을 두라는 얘기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현행 개정 상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금융회사 중 상장된 63개사가 추가로 준법지원인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신한 하나 KB금융지주 등 7개 금융지주사는 물론 △외환은행 등 5개사 △삼성생명을 비롯한 13개 생보사 △대우증권 등 23개 금융투자사 △삼성카드 등 8개 여신전문회사 △솔로몬저축은행 등 7개 저축은행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미 감사나 사외이사 등 내부통제 제도는 충분히 갖춰져 있는데 왜 준법지원인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결국 자격요건을 개방하지 않고 법조인으로 한정 짓는다는 것은 밥그릇 챙기기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을 보면 비판의 소지가 충분하다. 법무부가 준법지원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금융전문가들도 포함돼 있던 기존 준법감시인과는 달리 자격요건을 변호사, 법학자 등 법률가로 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모 은행 감사는 "기존 준법감시인의 경우 변호사 외에 공인회계사나 금융전문가들이 포함돼 있었지만 준법지원인은 변호사와 법학전문가로만 한정 지은 이유가 무엇이겠느냐"고 힐난했다.
무엇보다 금융회사에서 준법지원인 역할이 불명확하다는 것이 문제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중복 임명 시 금융회사 부담 가중보다는 역할 중첩에 따라 내부통제제도 운영에 큰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준법감시인이 담당하는 내부통제 기준이나 준법지원인이 담당하는 준법통제 기준이 사실상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감사 출신 한 인사는 "감사는 주주와, 준법감시인은 경영층과 손발을 맞춘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역할 분담이 있다"며 "하지만 준법감시인은 내부통제에서 역할 분담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상장 금융회사 한 임원은 "업무 중복에 따라 급여 지급 등 금융회사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정부가 밥그릇 때문에 무리한 규정을 요구하다 보면 은행권의 모럴해저드를 제대로 지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매일경제 송성훈 기자/박용범 기자/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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