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업계 `한국산 부품` 확보 전쟁

최윤성 MK전자 사장은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갑자기 몰려든 대만과 중국 반도체업체 관계자들이 "부품을 더 달라. 주문량을 늘리겠다"고 통사정한 것.

본딩 와이어는 인쇄회로기판과 그 위에 끼우는 반도체 부품을 서로 정밀하게 연결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가느다란 금속선으로 반도체 핵심 부품이다. MK전자는 이 분야 세계 4위 업체지만 다나카금속, 스미토모메탈 등 일본 경쟁업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염려되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제한 송전과 원전 사태 등 여파로 일본 전자부품 업체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전자업계 부품 산업지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은 전자ㆍ정보기술(IT) 부품의 글로벌 공급기지 기능을 수행해왔으며 반도체용 웨이퍼(60%), BT레진(80%), 세리아 슬러리(90%), 블랭크 마스크(88%), MLCC(50%) 등 여러 품목에서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일본 부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부품 공급처 다변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한두 개 핵심부품만 제때 조달하지 못해도 완제품 생산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일본산 부품 리스크를 경험한 전자업체들이 부품 공급망 재편성에 속속 나서면서 국내 부품업체들 경쟁력이 제고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최 사장은 "신소재 부품 주문이 몰려 주말은 물론이고 하루 24시간 철야로 공장을 가동 중"이라고 말했다.

반도체ㆍLCD 제조공정의 포토마스크 재료인 블랭크 마스크를 생산하는 에스앤에스텍에도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포토마스크는 반도체ㆍ웨이퍼 등에 패턴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필름으로, 블랭크 마스크는 포토마스크 원재료다. 호야ㆍCST 등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 88%를 점유하고 있다.

에스앤에스텍 관계자는 "LCD용 블랭크 마스크 세계 1위 업체인 CST가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일부 고객사들이 재고 확보 차원에서 주문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주 재료인 웨이퍼(실리콘을 얇고 둥근 원판 형태로 만든 뒤 여기에 전자회로를 새겨 넣음) 분야 세계 4위 업체인 LG실트론도 최근 주목받는 업체다. 세계 1~2위 웨이퍼 제조업체인 신에쓰와 섬코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ㆍ하이닉스 등 국내외 업체에서 추가 주문 문의가 밀려들고 있지만 이미 공장 가동률이 100%에 가까워 생산량을 마음껏 못 늘리는 점을 안타까워할 정도다. 그렇다고 라인 증설을 섣불리 단행하기도 고민스럽다. 통상 추가 라인 신설에 6개월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주로 삼성전자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견 반도체장비업체 A사는 최근 일본 반도체업체들에서 신규 주문 문의가 급증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반도체 제조 전 공정에 사용되는 쿼츠웨어(Quartz ware) 분야 세계적 업체인 일본 신에쓰가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일본 반도체업체에서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삼성전자 주요 공급업체에 주문을 내겠느냐며 반도체부품 공급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일본에 지질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부품ㆍ소재ㆍ장비 분야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최용성 기자/황인혁 기자/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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