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는 호기심이 부른 재앙에 주로 인용된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한 상자를 판도라를 시켜 인간 세상에 내려 보냈다. 판도라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는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상자를 열고 말았다. 그때부터 인간의 모든 불행이 쏟아져 나왔다. 당황한 판도라가 급하게 상자를 닫아 ‘희망’만 그 상자에 남게 됐다.
지난주 전자신문이 ‘롯데마트 통큰 넷북 속에 통큰 불법 복제’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내자 상황은 비슷했다. 기자들이 대기업 할인마트에서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가 이뤄진다는 제보에 호기심을 갖고 파헤쳤다.
기사가 나가자 롯데마트와 ‘통큰 넷북’ 제조사인 모뉴엘에는 치명적인 재앙이 몰아 닥쳤다. 주요 SW 기업들이 법정 대응까지 준비하면서 이미지 타격은 물론이고 거금의 배상금까지 물어줘야 할 판국으로 내몰렸다.
기사를 쓴 기자들도 생각지 못한 ‘악플’과 정체불명의 ‘메일 테러’라는 재앙을 맞았다. SW 불법복제가 이미 공공연하고 일반화돼 있는데, 굳이 이를 파헤친 의도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SW 기업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작업’이 아니냐는 노골적인 의혹도 제기했다. 턱없이 비싼 SW가 불법 복제를 부추긴다는 점잖은 지적도 나왔다.
그간 만연한 불법복제가 우리나라 SW 산업을 망친 첫 번째 요인이라는 컨센서스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번 기사로 확인한 가장 큰 재앙은 우리의 저급한 SW 저작권 인식이었다. ‘SW=공짜’라는 인식이 여전히 만연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에는 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애플 같은 글로벌 SW 기업이 탄생하지 않느냐고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희망’은 남았다. 롯데마트와 모뉴엘은 이번 사태를 ‘보약’으로 삼기로 했다. 불법복제 SW가 유통점이나 제품에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직원교육과 감시활동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롯데마트가 반면교사가 돼 다른 대형 할인마트 가전매장에도 SW 불법복제 단속이 한층 강화됐다는 소식이다. 이번 사태가 SW산업 강국으로 커 가는 하나의 ‘성장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보통신담당 장지영차장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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