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유통 미스터리’ 이유는

`그 많은 5만원권은 다 어디로 갔을까.`

5만원권의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의문이다. 지난 2일 현재 5만원권 유통잔액은 20조1076억원. 어림잡아 4억215만장의 5만원권이 시중에 돌고 있다는 계산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당 5만원권을 9장씩 들고 있는 셈이 된다. 이 정도 숫자라면 5만원권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자주 활용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현재 유통 중인 은행권을 금액이 아닌 장수로 비교해 보면 5만원권의 확산 정도가 훨씬 뚜렷해진다.

지난 2일 현재 유통 중인 지폐를 발행액 기준으로 분류하면 △5만원권 20조1076억원(47.2%) △1만원권 20조761억원(47.1%) △5000원권 1조1107억원(2.6%) △1000원권 1조3191억원(3.1%) 등으로 총 42조6269억원이다. 이를 장수로 구분하면 △5만원권이 4억215만장(10.18%) △1만원권이 20억761만장(50.81%) △5000원권이 2억2214만장(5.62%) △1000원권이 13억1910만장(33.38%)이다.

단순히 지폐 장수만 따진다면 5000원권보다 1.81배 흔한 지폐가 5만원권이란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통계가 일반 국민의 체감도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5000원짜리보다 5만원짜리 지폐가 2배 가까이 많이 돌아다닌다`는 통계적 진실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한국은행이 금융회사 이용고객 80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5만원권 발행 이후에도 평소 소지하는 현금 액수 자체는 큰 변동이 없다는 응답이 81%에 달했다. 5만원권이 그다지 자주 사용되는 지폐는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상당량의 5만원권 지폐가 장롱 속에 묻혀 있는 것 아니냐` `말 못할 비자금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5만원권이 자금 추적이나 상속ㆍ증여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가 고액 세금체납자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장롱 속 5만원권 지폐다발을 발견한 사례도 있다. 한국은행 역시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화폐의 기능은 △교환 수단 △가치척도 수단 △연지급 수단 △가치저장 수단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어느 나라든지 고액화폐는 가치저장 기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만원권의 빠른 확산을 `장롱 속 현금다발`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다.

한은 관계자는 "5만원권이 세금 탈루 등 어두운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며 "그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꼽고 있는 5만원권의 인기 비결은 △경제규모 확대로 늘어난 고액권 수요 △휴대 및 대금결제 편리성 △5만원권을 입출금할 수 있는 CD기ㆍATM 보급 확대 등이다.

5만원권이 10만원 자기앞수표의 수요를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5만원권의 경우, 수표와 달리 배서나 신분확인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2010년 하반기 중 10만원권 자기앞수표 결제금액(일평균)은 5만원권 발행 전인 2009년 상반기보다 30%가량 감소했다.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CD기ㆍATM도 크게 늘어났다. 약 4만9000대의 CD기ㆍATM 가운데 5만원권을 입출금할 수 있는 기기는 2009년 6월 말 4.6%에서 작년 6월 말 20.4%로 크게 늘어났다.

물론 휴대가 간편하다는 점은 `장롱 속 5만원권`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 사과상자 한 개에는 통상 2억원의 1만원권이 들어가지만 5만원권으로는 8억원가량을 담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09년 6월 이후 상속ㆍ증여세 증감을 살펴보면 5만원권의 세금 탈루 용도로의 활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상속ㆍ증여세의 경우 시기별로 들쭉날쭉한 정도가 워낙 심한 데다 세율마저 조정돼 보조지표로서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매일경제 이진우 기자/전병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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