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공교롭게도 KBS 공사창립 38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의 대표방송 KBS가 1973년 3월 3일, 정부기관의 국영방송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영방송 체제로 창립한 것이다. 이 역사적 대사건은 주무장관의 의지와 방송을 천직으로 알고 분골쇄신했던 방송 선인(先人)들의 공덕이다. 이 쾌거의 주역들은 문공부 장관 윤주영과 KBS 중앙방송국장 최창봉, 그리고 방송관리국장 노정팔(1919-2002) 등이다. 뒤에 두 분은 올곧은 순수 방송인으로 일생을 방송 파이오니어로 TV, 라디오 방송의 초석을 다진 우리나라 최초의 PD이기도 하다.
한국방송의 역사적 큰 획은 1927년 일제하의 경성방송부터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미 군정하의 방송국, 1948년 정부수립 후 공보처 산하의 KBS, 그리고 1973년 오늘 공영방송 KBS로의 출범 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를 지배한 KBS는 온갖 영욕과 상흔의 80여년 역사를 짊어진 채 살아왔다. 그러나 돌아보면 KBS를 이만큼 세계적인 방송사로 키워온 데는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불타는 열정을 바친 방송 선인들의 은덕이라 할 수 있다
일제하 경성방송에서 한국어를 수호하며 한국방송인들을 보듬었던 이혜구(1909-2010)는 해방 후 KBS 총수가에 국장에게 할당된 관용차를 업무에 쓰도록 하고 자신은 도시락을 싸들고 대중교통편으로 출퇴근 된 뒤 하며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나는 일제에 봉직한 사람이라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흔도 안 된 나이에 국장직을 사임하고 서울대에 국악과를 창설, 국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였다. 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라진 방송계를 보라보면서 이 선인의 유훈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나의 정신적인 멘토였다.
서울중앙방송국장을 두 차례나 지낸 우리나라 첫 야구캐스터 윤길구(1916-1966)는 “방송에 살고 방송에 죽을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늘 말할 정도로 좋은 방송에 혼신을 다했다. 그는 국장 시절 중앙공보관장으로 발령이 나자 공보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방송인을 어떻게 홍보맨으로 보내느냐”고 주사급(6급) 장관 수준이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평생을 집 한 채 없이 청빈하게 살았지만 그에게는 풍부한 유머와 기지, 그리고 하늘을 뚫을 듯한 기개(氣槪)가 있었다. 그의 죽음은 한국 최초의 방송인장, 최초의 방송인 친목단체 방우회(放友會)를 탄생시켰다.
공사 창립 38주년을 맞은 KBS, 발등의 불은 아무래도 수신료 1000원 인상 건이다. 이번엔 반드시 인상돼야 한다. 아무리 KBS에 좀 부족한 점이 있다 해도 30여년씩 동결은 어떤 설명도 췌사에 불과하다. 특히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말라. 이미 정파적으로 할당된 KBS 이사회가 결정한 일이며 지금 야당도 여당시절 인상안을 추진한 장본인들이다.
KBS도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라. 방송 세상이 천지개벽하는데, 어쩌자고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살 것인가. KBS는 주인인 국민들을 감동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이만하면’ 정도의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주인에 대한 관리인들의 예의이리라.
김성호 객원논설위원·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kshkbh@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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