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30>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Photo Image

 과학기술계의 명실상부한 대표 지원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이 올해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고민에 휩싸였다. 올해 초 기관장도 새로 왔다.

 한국연구재단의 올해 예산 집행 규모는 대략 3조원.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20% 이상이 이 기관을 통해 집행된다. 전 학문분야를 지원하는 명실공히 국가대표 연구지원관리 전문 기관인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올해 장기화하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국가 경쟁력과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신(新)지식창출과 인재양성에 올인할 방침이다.

 과학재단 32년, 학술진흥재단 28년,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5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조직을 통합한뒤 한때 흔들리기도 했다.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3개 조직을 통합한지 1년 7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체 임직원들의 화합으로 ‘비전 2020’과 전략별 핵심 과제를 수립하는 등 기반은 어느 정도 놓인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일부 보완해야 할 점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오 이사장은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다.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지원체제 재확립도 그런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학문분야별 특성에 맞는 사업추진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다양한 학문분야별 특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연구 지원의 효율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올해 한국연구재단이 역점을 둬 추진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우선 PM(연구사업관리전문가) 제도의 선진화를 통해 선도형 창의연구지원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이를 통해 각 학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PM들이 연구기획부터 과제선정, 평가관리까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PM제도는 세계 최고 연구지원관리기관이라고 인정받는 미국 NSF(국립과학재단)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지금까지 연구재단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왔지만 현재 완전히 정착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PM제도는 연구재단이 연구지원관리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며, 이 과제를 해결해야만 고객인 연구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PM제도를 확립하여 선도형 창의연구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쓰겠습니다.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근원은 인력에 있다고 볼수 있는데요, 신진 연구인력 지원을 위한 방안은 있는지요.

 ▲지금까지 연구 재단은 국가과학자, 리더연구자 및 중견연구자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창출한 연구자에 대한 지원정책을 잘 갖춘 반면, 신진 연구자를 획기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다소 부족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30대에 이룬 연구결과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박사학위를 마친 직후인 30대가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고 도전적인 연구를 수행할 의지가 가장 충만한 때임을 방증합니다. 이에 신진 연구인력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 우리나라에도 노벨과학상이 나올 수 있는 창의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

 -연구재단으로 통합된 후 여러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외부평가와 감사 등의 결과를 반영해, 미흡한 부분과 권고사항에 대해 맞춤형 경영효율화 과제를 채택하고 조치를 완료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방만경영 해소, 조직구조의 최적화, 노사관계의 선진화, 성과연봉제 시행,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직원 간 융합, 정원 증원 등의 과제를 집중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현재 연구재단은 경영 효율화(조직개편)와 성과평가체제 개선 및 성과연봉제 구축을 위한 외부 컨설팅을 진행 중입니다. 올해에는 컨설팅 결과를 재단 현실에 맞게 경영효율화 2단계로 도약하고, 중점 분야인 보수, 인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공공기관 선진화의 모범이 되겠습니다. 지난해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태의 핵심은 ‘신뢰와 소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재단 출범 이후 PM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 적극 추진했는데, PM의 권한과 역할 및 PM조직에 대한 정의 등이 명확하고 정교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직원과 PM간에, PM과 PM간에 상호 신뢰하고 소통하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은 무엇일까요. 연구재단에서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최근 가장 뛰어난 미국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레이건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각계의 전문가들이 ‘레이건 리더십’에 대해 다양한 분석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레이건 리더십 최고의 덕목은 바로 ‘비전, 신념 그리고 자신감’이었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연구재단은 ‘인간과 자연 탐구를 위한 종합적 지원’이라는 미션 하에, ‘세계 7대 지식강국을 향한 연구지원관리 글로벌 리더’라는 ‘한국연구재단 비전 2020’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전략목표와 핵심과제들을 도출하여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있었다면,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통(疏通)’은 말 그대로 뜻이 서로 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저는 임원과 직원 간에, 직원과 직원 간에, 직원과 PM간에, PM과 PM간에 상호 신뢰하고 뜻이 통하는 문화를 구축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임기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우리나라가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우선 신진연구인력을 획기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대다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연구 지원의 부족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인 30대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실험분야의 경우, 외국에서 활발히 연구하던 과학자들도 귀국하면 정착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없어 실험에 반드시 필요한 연구장비를 갖추는데 5년 이상 소요되고, 연구장비를 마련하느라 어렵고 힘들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연구재단에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도출한 기성연구자에 대한 지원 정책이 잘 갖추어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부족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국민에게 자부심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 성과가 창출될 것이고, 우리나라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영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학문분야별 특성에 맞는 학술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에는 다양한 세부 학문 분야가 존재하기 때문에, 분야별 특성이나 수요가 상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수학은 연구장비가 아닌 국내외 우수 연구자들과의 교류가 필요한 반면, 생명과학은 초기에 고가의 연구기자재가 상당히 많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연구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획일적인 지원규모와 시스템으로 지원한다든지, 동일한 잣대의 집단연구시스템을 강요한다면, 연구지원의 효율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교육지원사업의 확대도 필요합니다. 미국 NSF는 미래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중·고교 및 대학의 수학·과학(STEM) 교육을 강화하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재단도 BK21사업, WCU사업, 광역경제권인재양성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의 교육역량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교육보다는 ‘연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학의 교육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에 전념하는 교수들에 대한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정책연구를 강화할 것입니다. 초중등 교육을 위해서는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설립하여 체계적으로 운영·관리하고 있지만,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 향상을 전담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이 대학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정책연구 기능을 갖추고 이를 강화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겠습니다.

 

 <기초과학 육성 이렇게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강국 도약 방침에 따라 한국연구재단은 올해 중점 사업으로 과학기술 분야 기초연구지원사업 지원을 강화한다.

 이 사업 예산은 2009년 6410억원(개인 기초연구비 5000억원)에서 지난해 8130억원(기초연구비 6500억원), 올해는 9200억원(기초연구비 7500억원)으로 증액됐다.

 연구재단은 이를 위해 우선 미래 연구리더 육성을 위한 신진연구자 지원을 대폭 강화한다. 연구장비비를 포함해 5년간 총 12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인 ‘우수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을 신규로 추진한다.

 지난해 종료된 ‘학술연구교수사업’을 대체해 5년간 총 7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박사 후 연수사업’도 신설, 영한다.

 올해 12개 선도연구센터도 신규로 선정하고, 세계 수준의 창의성과 탁월성을 지닌 대형 연구집단을 추가 육성하기 위해 교수 20~30명이 참여, 매년 20억원 이상을 지원 받는 프리미엄급 대형 선도연구센터를 지원할 계획이다.

 미래 유망 과학기술 연구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적인 지원도 실시한다. 기초연구 100대 미래 유망분야를 발굴해 중견연구자지원과 선도연구센터에 미래 유망분야 관련 과제를 집중 지원한다.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학문분야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했다.

 과학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학문 후속세대들의 연구 참여를 대폭 확대, 안정된 연구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 올해 173억원을 지원하는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을 신설하고, 학문 후속세대 지원사업 예산을 지난해보다 50억원 늘려 총 332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한다.

 또 연간 연구수당을 증액해 현실화한다. 연구수당은 인문 사회 연구현장의 큰 애로사항으로, 이르면 올해부터 연구 참여자의 연구수당을 현실화하고, 행정처리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등 연구과정의 실질적인 편의성을 제고해 나갈 방침이다.

 이외에 우수논문 및 저술 사후지원과 인문저술지원의 규모를 크게 확대한다.

 인문사회 분야의 특성을 고려해 보다 자유로운 학문 풍토를 조성하고 우수논문과 저술 사후지원의 지원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고체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국가 학술 및 연구개발 정책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왔을 뿐만 아니라 조직 운영 및 행정능력까지 겸비한 국내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지난 1975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81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이학(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4년 귀국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에 선임되기까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행정업무 총괄, 정책수립과 집행, 조직운영 등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기술연구회 비상임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술 및 연구개발 정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학기술계는 물론이고, 과학기술 인접 분야 연구자 및 정책 입안자들과의 폭넓은 교감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도 강점으로 꼽힌다.

 오 이사장은 지식과 인재가 국력인 시대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학술과 과학기술의 더 큰 발전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는 시각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제2의 도약을 통해 기초·원천연구를 선진화하고 신성장동력 창출과 선진 일류국가 진입에 앞장 서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Photo Image
Photo Image
Photo Image
Photo Image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