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특허

 특허제도가 인류사회에 도입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640년 전인 이탈리아 베니스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현재와 비슷한 특허제도가 도입됐다. 베니스공화국은 그 당시 유리제조업과 모직업이 크게 발달했으나 기능인 사이 경쟁이 치열하면서 기술베끼기 등의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래서 기술을 가진 기능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특허제도였다. 640년 전의 제도였지만 특허의 신규성, 10년 이하의 특허 기간, 침해시 보상방식 등이 상세히 담겨져 현재의 특허제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이 법에 따라 1594년에 ‘양수 및 관개용 기계’에 대한 특허권을 획득했다. 이후 1624년 영국의 전매조례(Statute of Monopolies)가 공표되면서 특허가 법적인 권리로 인정받게 된다.

 우리나라 특허 역사는 일본의 침략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일본은 1910년 우리나라를 합병하면서 일본 특허법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했다. 해방후에는 미군 점령법에 의해 다시 특허법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상당기간 동안 이렇다할 제도 개선을 이루지 못했지만 산업 발전에 따라 1977년에서야 특허청을 개청, 특허 제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기술인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특허제도는 기술을 뒤늦게 확보하려는 기술인에게는 족쇄가 된다.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기술을 확보한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업력이 오래된 기업에게 유리한 것이 특허제도인 셈이다.

 최근 국내 기업들은 세계 선발업체, 혹은 특허만을 보유한 소위 특허괴물 등의 먹이감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해마다 수십건, 혹은 수백건의 특허 피소를 받고 있다. 마치 지난 80~90년대 일본기업들이 급성장하자 서구 기업들이 일본기업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특허제소를 한 사례가 재현되는 듯하다. 후발기업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최근 국내 기업들이 1조원을 넘게 로열티를 지급한 코닥사 특허가 무효가 된 사례는 배아픔을 넘어 씁쓸하다. 싸울려고 하지 않는 한 시비거는 사람들은 결코 줄지 않는다.

 전자담당 유형준 차장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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