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현장형 장인의 노하우

 #전기기기 전문업체에서 일하는 A씨.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용 전기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25년 넘게 일하면서 그는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자리에 올랐다. 요즘 들어오는 직원들 중에는 석·박사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회사 내 최고 기술자로 꼽힌다. 회사에서 연구개발(R&D)을 총괄하고 있는 A씨지만, 그는 대외적으로 기업의 연구소장이 되지 못했다. 고졸자는 기업부설연구소에 소속될 수 없다는 국가 규정 때문이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성형사출 업체의 사장 B씨는 최근 한 대학교수와 논쟁을 벌였다. B씨는 스무 살 무렵부터 한 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경험을 축적해 본인이 작성한 작업 노트만 수십권에 이른다. B씨는 최근 정부 지원을 통해 한 대학교수로부터 기술자문을 받고 있다. B씨는 자신의 공정 노하우를 믿고 있지만 젊은 대학교수는 이론과 다르다며 기존 공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B씨는 “그동안 내가 작업해 온 방식을 이론적으로 명쾌하게 증명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수십년간 쌓아 온 노하우가 폄하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는 이른바 ‘현장형 장인’이다. 수십년간 한 우물을 파면서 습득한 노하우에 대해 자신감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이런 장인보다는 좋은 학벌을 갖췄거나 새로운 기술을 들고 나오는 사람을 더 높게 보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현장에서 체득한 노하우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편이다. 나이 마흔 살이 넘은 사람에게는 ‘아이디어가 고갈됐다’며 연구개발보다 관리직 임무를 맡기는 일이 많다. 수십년간 현장을 지켜온 사람보다 외국에서 높은 학위를 따온 사람, 좋은 논문을 발표한 사람을 더 대우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가까운 일본을 보면 몇 대를 이어가며 한 가지 아이템에만 집중하는 기업이 우리보다 월등히 많다. 오랜 경험을 쌓은 숙련공을 존중하는 문화도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가 만든 휴대폰과 TV 등 전자기기는 글로벌 톱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디지털 강국으로 꼽힌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는 조립, 세트산업의 강자지 원천 뿌리기술의 강국은 아니다. 모듈이나 부품을 조립해 최고의 기기를 만드는 데는 탁월하지만 부품·소재산업이나 용접·사출 같은 뿌리산업에서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산업의 돌파구는 신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품·소재나 생산기술 같은 뿌리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으면서 전체 산업을 업그레이드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원천 분야에서는 특히 ‘현장형 장인’의 노하우가 중요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장인의 노하우는 단시간에 획득하기 어렵다. 장인들의 경험을 잘 살리고 전수하면서 이들의 노하우를 개선시켜 나가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작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춘 기업이 적지 않다. 이들에 국가 R&D사업 기회를 확대해 주면서 현장에 숨어 있던 장인의 노하우를 밖으로 끄집어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김승규 산전부품팀장 se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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