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단타 매매를 허용하겠다고?

1초도 길다.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단위로 남보다 한 발 빠르게 매매한다. 밀리세컨드, 마이크로세컨드의 세계까지 갈 수도 있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이 같은 초단시간에 이뤄지는 매매가 전 세계 증시를 강타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이른바 극초단타 매매다. 이런 극초단타 매매 활성화를 한국거래소가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극초단타 매매 약 될까 독 될까=극초단타 매매는 초단시간에 수차례에 걸쳐 대량 거래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고빈도 매매(HFTㆍHigh Frequency Trading)`라고도 불린다. 컴퓨터 프로그램(알고리즘)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알고리즘 매매`로도 통한다.

지난해 5월 뉴욕 다우지수가 단 20분 만에 1000포인트 급락한 사건이 발생했다. 뾰족한 이유를 찾기 힘든 `순간 폭락` 뒤엔 여지없이 `HFT`가 자리잡고 있었다.

뉴욕 증시에서 이뤄지는 주식매매 가운데 HFT 비중은 최근 50~6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걷잡을 수 없는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순간 폭락`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만큼 미국 현지에선 규제 여론이 강력히 확산되고 있다.

HFT 기법을 이용하는 투자자들은 고성능 슈퍼 컴퓨터를 통해 특정 종목에 대한 다른 투자자들의 매수 정보(매수 호가, 주문량 등)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알고리즘)을 만들고 매수 강도가 일정 기준 이상으로 올라오면 자동으로 사고팔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같은 알고리즘을 통해 다른 투자자보다 한 발 앞서 싼 가격에 특정 종목을 매수한 후 좀더 높은 가격에 되파는 기법으로 이익을 올린다.

이 모든 과정은 길어야 수초를 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나온 슈퍼 컴퓨터에 의한 주식매매 속도는 일반 컴퓨터보다 10배 이상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차익은 크지 않지만 워낙 거래량이 많은 만큼 이익 규모는 막대하다.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이 기법으로 단번에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의 이익을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프로그램이 100% 완벽하지 않은 만큼 손해를 볼 때도 있다.

HFT 도입을 검토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에서도 감지된다. 지천삼 한국거래소 팀장은 17일 "알고리즘 매매 도입(활성화)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도입을 위해 시스템 업그레이드(속도 개선 등)와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 등이 필요한 만큼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확산되는 비판론=미국은 HFT에 대해 규제의 칼을 들이대려 하는데 한국거래소는 내심 도입을 희망하는 듯한 모습이다.

지 팀장은 "HFT에 대해 학계에서는 이론적으로 긍정적인 면이 많은 시스템이라고 한다"며 "증시 유동성을 늘리고 종목별 호가 스프레드(간격)를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투자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거래소 움직임에 대해 국내 일반인뿐만 아니라 기관투자가들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 극초단타 매매가 일반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으나, 거래소는 아직도 어정쩡한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질타했다.

고 의원은 "한국거래소가 매매 활성화(거래량 증가)를 유도해 거래수수료를 많이 챙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시장에서 HFT는 선물ㆍ옵션 등 파생시장에서만 일부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 한 대형 기관 관계자는 "정보가 느린 기관과 일반투자자들은 애꿎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기법은 투자의 정석인 장기 투자 문화에 완전히 배치될 뿐만 아니라 단시간에 변동성을 확대시켜 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도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대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남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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