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값싼 전기, 비싼 대가

 어릴 적 재미 있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손을 더듬어 초를 찾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정전될 때를 대비해 양초는 각 가정마다 필수품이었고, 손이 잘 닿는 서랍이나 선반에 놓아 뒀다. 집들이 때도 환영받는 선물 중의 하나였다.

 정전이 그만큼 잦았던 시절 일상의 한 조각이다.

 요즘은 1년을 통 털어도 평균 정전시간이 14분 가량이다. 그 정도로 전력 품질에 있어선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것이다. 이렇게 품질이 좋아진 전기가 요즘은 추운 겨울을 녹이는 난방용으로 많이 쓰인다.

 난방용 전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가 전체 전력 예비율도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수요량에서 뺀 예비 전력량이 처음으로 6%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그런데, 전기가 편하고 언제 어디서나 있는 공기처럼 여겨지다 보니 전력 예비율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해도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나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정부나 한전이 어떻게 하겠지’라며 나 자신하고는 무관한 일로 넘긴다.

 하지만, 대규모 정전 사태나 강제 단전과 같은 ‘그런 일’은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앞에 닥칠 수 있다.

 우리나라 수출과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나 LCD만 하더라도 그렇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대명사인 이들 산업은 전기가 아주 고르게,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제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력 예비율이 지금보다 더 내려가 2~3%대 바닥으로 떨어지면 정전을 막기 위해 불안정한 전력이라도 다 끌어모아 공급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이들 정밀 제조업은 불량 또는 공정 오류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무심코 켜놓은 난방히터나 온풍기가 우리 경제의 기둥인 공장을 멈추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민 공공물가의 중심에 있는 전기요금은 인상 때마다 강력한 저항을 받는다. 그래서 지금도 원가의 100%에 못미치는 가격에 공급되고 있다. 시장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전기 공급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와 한전이 국민과 산업을 위해 값싼 요금에 양질의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급량을 넘어 전기를 무작정 써버린다면 어느 순간 생활뿐 아니라, 국가가 멈춰 설 수 있다.

 전기는 국가를 움직이는 에너지이지만, 어디까지나 2차 에너지다. 경제성이 높은 우라늄도 있지만, 석탄과 가스 등 화석연료라는 1차 에너지를 태워 전기를 뽑아낸다. 아직까지 화석연료 비중이 우라늄보다 더 높다. 전기는 값싸게 공급받지만, 이 연료의 99% 이상은 수입해서 들여와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에어컨을 꺼두는 방법으로 전력 위기 극복을 함께 실천할 수 있었다. 이젠 겨울에 더 많은 전기를 쓰다보니 ‘오전 10~12시, 오후 4~6시 하루 두 차례만 전기히터를 끕시다’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겨울철 전력수요를 낮추는 것은 이제 실천의 문제가 됐다.

 값싼 전기라고 무턱대고 낭비하고, 내키는 만큼 쓰다보면 진짜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생활에도, 국가경제에도.

 이진호 그린데일리팀장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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