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절기(節氣)상으로 우리네 최대 명절인 ‘설’은 한 달 남짓 더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아직 ‘토끼해(辛卯年)’라는 말을 쓸 수 없을 따름이다. 양력(陽曆)과 음력(陰曆)이 다르다 보니 ‘설날’과 ‘새해 첫날’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음이다.
옛부터 새해 첫날을 뜻하는 말은 아주 많았다. 주로 ‘원단(元旦)’이라는 말을 쓰지만, 한 해의 첫머리라는 뜻에서 ‘세수(歲首)’라고도 한다. 원조(元朝)·원일(元日)·원삭(元朔)·원정(元正)·삼원(三元)·세조(歲朝)·세단(歲旦)·수조(首祚)·정조(正朝) 등이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닌 말로는 ‘신일(愼日)’이 있다. ‘근신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우리네 정월 풍속(風俗)에 삼가하고 조심하는 내용이 많은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예로부터 설날에는 여자들이 남의 집에 가거나 바느질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또 문을 바르거나 재를 치우지 못하게 했다. 모두가 설 이전인 섣달 그믐에 해치워야 하는 일들이었다. 정초(正初)에 이 같은 일을 하면 부정을 탄다거나 재수 또는 복(福)이 나가거나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일종의 토속신앙(土俗信仰)과도 같은 풍속이었다.
새해에 덕담을 나누는 연하장(年賀狀)에 주로 쓰는 문구도 ‘근하신년(謹賀新年)’이다.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의미다. ‘삼가’라는 단어는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라는 뜻의 부사다. 동사로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또는 ‘꺼리는 마음으로 양이나 횟수가 지나치지 아니하도록 한다’는 뜻의 ‘삼가다’가 있다.
새해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기대에 부풀게 한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도 하고, 이루고 싶은 소망을 빌기도 한다. 혹자는 ‘금연(禁煙)’을 선언하기도 하고, 혹자는 ‘승진’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자칫 욕심만 앞서서는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십상이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연초일수록 더욱 삼가는 마음으로 차분히 준비해 온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배워볼 필요가 있다. 독자(讀者) 제위(諸位)께 삼가 새해를 축하드린다. 謹賀新年!.
수원=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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