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감성 인터페이스

 기계와 사람이 서로 교감하는 시대가 과연 올 것인가. 미래학자는 물론이고 과학자가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는 질문이다.

 사람이 기계와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서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게 분명하다. 가령 휴대폰이 사용자 기분을 알아서 첫 화면과 벨소리를 자동으로 바꿔 주고, TV가 시청자 심리 상태를 인지해 반응하고 원하는 채널을 찾아 준다. 거기에 상상만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모두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이미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기술이 최근 사회적 함의어로 떠오른 ‘소통’이다. 기계와의 소통, 즉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의 탄생과 함께했다. 반세기 전 컴퓨터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인터페이스는 일종의 컴퓨터와 이야기할 수 있는 교감 언어다. 마우스·키보드 모두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교감 도구인 셈이다. 과거와 미래 인터페이스의 다른 점이 있다면 ‘감성’의 개입이다.

 감성은 감정과 다르다. 감성은 과학적으로 감각과 인지 능력의 총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에 분석적인 사고가 따르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하는 정신 상태인 ‘식스 센스(sixth sense)’ 육감까지 6가지 감각을 가지고 있다. 6가지 감각과 이를 인지하는 뇌의 활동이 감성의 발현지다. 뇌를 연구하는 뇌 과학이 발달할수록 감성의 놀라움이 새록새록 밝혀지고 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감성은 진화에 의해 형성된 생물학적 특징이며 감성은 생존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인간 진화 과정에서 뇌 조직은 이성적인 정보 처리가 아닌 감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먼저 발달했다는 것이다. 감성은 동물로 하여금 행동 방향을 정해주고 생존과 직결된 만큼 감성의 영향력이 강력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인터페이스에서 감성이 화두로 떠오른 데는 기술이 점차 ‘인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애플 아이폰이 다른 스마트폰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터치’였다. 감탄할 정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소비자를 끌어당겼다.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에 인간 중심의 감성적인 면을 부각한 게 애플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기술뿐만 아니라 감성은 이미 감성 마케팅, 감성 경영, 감성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시장의 주인 격인 ‘소비자’가 바뀌고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성능은 너무나 당연한 기본 요소로 전락했다. 추가로 감성적인 만족감이 상품을 구매하는 중요한 동기로 떠올랐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정보화 사회 이후 도래할 세상으로 ‘드림 소사이어티’를 제시하며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해야만 차별적인 경쟁 우위를 갖는다고 말한 점도 이 맥락과 맞닿아 있다.

 김후종 SK텔레콤 단말연구소장은 “감성 인터페이스는 꿈같아 보이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기술”이라며 “인간의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인지해 이를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작업을 거치면 생각만으로 기기를 작동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감성은 이미 산업계의 화두다. 대학과 연구기관, 주요 전자업체는 감성 인터페이스를 포함한 기술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MIT·마이크로소프트·NTT도코모·어펙티브 미디어사 등 글로벌 연구기관은 감성 융합기술을 차세대 프로젝트로 선정해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미국 MIT는 감성과 상호 작용하는 키스멧 로봇과 가상 캐릭터, 인간의 감성이 상호작용하는 ‘얼라이브(ALIVE)’, 인간과 사물이 감성을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디지털 라이프’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감성 게임, 감성 홈서비스 플랫폼 개발을 앞두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로테우스와 에스프리 프로젝트로 감성과 인간공학을 연구 중이다. 영국 럿보루 대학 CES, 네덜란드 아이트호벤의 인간감각연구소(IPO) 등에서는 인간 감각 연구 결과를 제품에 응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어펙티브 미디어는 초기 버전의 감성 정보를 이용한 단말과 시스템을 개발한 상태다.

 로봇 분야에서 앞서 있는 일본 전자업체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소니는 인간 언어와 얼굴 표정으로 감성을 인식해 작용하는 감성 게임을 위한 표정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일부 메이저 통신업체를 중심으로 감성 융합 플랫폼 기술을 위한 기반 연구를 시작했다. 미쓰비시 연구소에서는 멀티 터치 기술을 적용한 다중 사용자와 원격 협업이 가능한 ‘테이블톱(TableTop)’ 컴퓨팅 환경을 구현했다.

 각 나라에서도 차세대 기술로 낙점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NASA 등 국책 연구원에서 감성 인식 연구가 활발히 진행하고 일본은 통산성 주도의 인간 생활공학 연구센터에서 ‘인간감각계측 응용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이 밖에 유럽연합은 2001년부터 ‘유럽 미래기술 기획’을 통해 기초 연구를 다지고 있다.

 신현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는 “미국은 국가과학재단이 나노·바이오·정보기술 외에 감성 기술을 국가 4대 핵심 과제로 제시해놓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유럽연합·일본 등 주요 선진국도 정부 차원에서 감성 기술의 산업화를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감성 기술은 어디까지

 국내에서도 연구 기관·산업계 주도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과 경쟁력을 놓고 볼 때 한참 뒤처진다. 국내 감성 기반 기술은 발전 초기 단계로 선진국 대비 50~80% 수준으로 전반적으로 낮은 실정이다. 감성과 관련한 국내 특허도 20여 가지로 주로 로봇 개발에서 파생된 게 대부분이다. 특허정보원 데이터를 인용 아직도 감성 인식 자체에 대한 연구개발은 활성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KT·LG·삼성·팬택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감성 모바일폰과 디스플레이 관련 프로젝트를 초기 단계에서 진행 중이다. 유진로보틱스 등 중소기업은 단순 감정표현기술을 적용한 로봇을 개발 중이며 모바일 업체는 유저 인터페이스와 스크립트 기술 등을 차별화 포인트로 정하여 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이동 통신사에 공급해 해외 시장을 우회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연구기관도 아직은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ETRI·카이스트·광주과기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생체신호 기반 감성추론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기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감성 기술 기반 인지 상황 기술과 관련해 연구 활동이 다소 탄력이 붙었을 뿐이다. 감성 기술과 관련한 국내 연구 인력과 장비 인프라도 취약한 상태로 감성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 주도로 신규 설비 투자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도 소극적이지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일부 해당 기술과 표준화 동향을 파악 중이다. 지경부는 나아가 감성기술 한 분야인 생체신호 계측과 인지 기술의 기초 기술 연구개발 지원을 시작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말 국가 육성 과제 중 하나로 감성 인터랙션기술을 선정하고 기술 범위와 동향 등을 분석해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화부는 ‘디-시네마(D-Cinema)비전 2010’을 선포했다. 하지만 단위 과제별로 선행 연구를 진행 중이어도 대규모 정부 주도 프로그램은 없는 상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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