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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필자는 ‘국제표준의 중요성 및 국제표준화 전략’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 내용을 일부를 언급하면서 이미 만들어 놓은 국제표준의 활용 및 유지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회사가 만든 휴대폰끼리 통화가 가능한 것은 표준을 따라 휴대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표준이 필요한 것은 ‘상호운용성’ 때문이다. 자기 회사 (또는 국가)가 만든 기술이 표준이 된다면 그 회사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많은 이익이 생기므로 회사는 자기의 기술을 표준화하려 애쓴다.
표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합의(consensus)’에 의한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든, 외교·정치적인 과정을 거쳐서든, 타 기술에 대한 우위를 입증해 공감을 얻어내서든 경쟁관계가 아닌 회사뿐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까지도 합의해야 표준이 된다. 아울러 표준 결정 시점에서의 준비상태 즉, 타이밍도 표준화 전략에 중요하다.
아날로그 컬러TV방송의 경우 미국·한국 등이 사용하는 NTSC, 독일·중국 등이 사용하는 PAL, 프랑스·러시아 등이 사용하는 SECAM 등 전 세계에서 총 9개의 전송방식이 사용된다. 상호운용성을 위해 통일할 목적으로 여러 차례 표준회의가 열렸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각 나라의 사정이 다르고, 자존심을 꺾기 싫은 등의 이유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가장 먼저 미국표준이 된 NTSC는 나중에 개발된 다른 방식들에 비해 화질에서는 떨어지지만 흑백TV로도 시청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흑백TV가 널리 보급돼 있는 미국의 경우 호환성이 중요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우 흑백TV는 극히 일부의 돈 많은 사람들이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백TV와 호환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블록 암호알고리즘의 경우 국제표준 ISO/IEC 18033-3에 현재 한국의 SEED를 포함한 6개의 알고리즘이 있다. 지난 10월 회의에선 한국의 HIGHT라는 경량 알고리즘도 추가됐다. 하지만 같은 회의에서 스트림 암호알고리즘 표준화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인해 모든 암호알고리즘의 국제표준화 기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논의 중 나온 이야기 중 중요한 것이 있었다. 새로 표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어져 있던 표준의 폐기도 중요하다며 폐기의 기준도 같이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그 기준은 ‘국제적으로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가’ 이외에는 다른 기준은 필요없다는 것이었고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즉, 모든 표준은 그 유지 여부가 주기적으로 검토되는데 그때 사용도를 정확하게 확인해서 폐기의 근거로 삼자는 것이었다.
본인이 20년 가까이 표준활동을 하며 지켜본 우리나라의 표준기관들은 표준을 만드는 작업에는 열심이지만, 그 표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표준기관 혼자 활용도를 높이려고 해 보아야 소용없겠으나 다른 정부기관들과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위의 암호알고리즘 국제표준화 선정기준 변경논의는 앞으로도 1년 정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 이후로는 보안알고리즘 전반에 걸쳐 역시 국제표준화 선정기준 변경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기존 우리 표준의 유지는 표준 신설만큼이나 중요하다. 때문에 디지털서명알고리즘인 EC-KCDSA 등 한국에서 만들어 국제표준화한 알고리즘들의 사용 활성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필중 포항공과대학교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pjl@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