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증권사 "한국주식 사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의 간판급 애널리스트인 A씨. 그는 12월 초에 떠나려던 크리스마스 휴가 계획을 단축했다. A씨가 한국 주식에 대해 긍정적인 보고서를 내놓자 해외 고객들의 반응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12월이 되면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매수 주문은 크게 줄어드는 게 관례.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연말 ’바이 코리아’를 외치며 ’한국 주식 세일즈’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과거 한국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일 때도 과감히 ’셀 코리아’를 외쳤던 일부 비관적 외국계 증권사까지 올해엔 ’바이 코리아’ 일색이다. 어느 때보다 한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싸고 유망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자가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를 통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향후 외국인 수급 전망에도 긍정적인 신호다. 실제 한국시장 주가수익비율(PER)은 9.5배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과 비슷한 산업구조의 대만이 12.5배이고 홍콩(16.6배), 중국(12.0배) 등은 우리보다 월등히 높다.

권구훈 골드만삭스증권 한국담당 이코노미스트(전무)는 "단순히 세일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년 한국 주식시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아 보이기 때문에 주식 매입을 적극 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찬영 한국맥쿼리증권 리서치센터장(전무)도 "한국 시장이 싸다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11월부터 한국시장이 아시아지역에서 최선호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외국계 증권사에서 내놓은 내년 코스피 전망은 낮게는 2300에서 높게는 2700에 달한다. 일부 증권사는 한국지점 인력을 크게 늘리고 있다. HSBC증권은 지난해 3명에 불과했던 지점 리서치 애널리스트를 올해 12명까지 크게 늘렸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도 해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주식 세일즈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리서치 인력과 세일즈 인력을 보강할 예정이다. 조경래 HSBC증권 한국대표는 "그룹 차원에서 한국 주식시장에 사업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맥쿼리증권은 글로벌 설비투자(Capex)가 크게 늘어나면서 한국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설비투자가 늘어나면 건설, 중공업, 조선업에서 강한 한국 기업이 유리해진다는 설명이다.

BNP파리바는 동남아시아 주식과 한국 주식이 키 맞추기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명선 리서치헤드는 "올해 동남아시아 주식시장이 북아시아 주식시장보다 성적이 좋았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한국을 비롯한 북아시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옮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메릴린치증권은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자금이 신흥 아시아로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봤다. 송기석 BOA메릴린치증권 리서치헤드는 "선진국이 아직 저금리 상태이기 때문에 시중 자금은 고금리와 함께 신뢰성이 있는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면서 "이런 조건에 맞는 지역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안 신흥국"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글로벌 시장을 보면 올해 아시아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가장 뜨거웠던 지역은 동남아시아였다. 한국이 1순위는 아니었다.

황찬영 전무는 "최근 2주간 글로벌 마케팅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보니 한국에 대해 비중 확대(overweight) 의견을 가진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내년에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외국계 리서치헤드가 많다.

정명선 BNP파리바 리서치헤드는 "전체적인 동향을 보면 외국인 순매수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것 같다"면서 "이번에는 가치투자나 장기펀드 쪽에서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현재 추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권구훈 전무도 "한국에 대한 관심은 직접 운용을 하는 매니저 단계보다는 의사결정을 하는 임원급이 많다"면서 "특히 예전에는 한국에 투자하지 않던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이 늘었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매일경제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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