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忘年會)’ 시즌이다. 이달 초부터 망년회 자리가 넘쳐난다. 망년회는 지난 일은 잊고 새해를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자는 모임이다. 요즘엔 잊을 망(忘) 대신에 보낼 송(送)을 써서 ‘송년회(送年會)’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혹자는 ‘망년회’는 일본식 한자어라 순화의 대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망년회’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써 온 말이다. 조선 전기 문인인 서거정 선생의 시(詩) ‘한강루의 망년회 석상에서(漢江樓忘年會席上)’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성 이백(李白)도 현종(玄宗)에게 지어 바친 시에 ‘망년회’라는 말을 썼다. ‘제천 정자 위에서 망년회(忘年會)를 열었을 때는 대궐 진수가 줄줄이 이어지기도 했었지’라는 구절이다.
국어사전에도 ‘망년회’는 올라있지만 ‘송년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1992년 수정판 민중엣센스 국어사전에는 망년회를 ‘연말에 그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 또는 그 연회’라 적고 있다. 하지만 ‘송년회’라는 단어는 올라있지 않다. 다만 ‘송년(送年, 한 해를 보냄)’과 ‘송년사(送年辭, 묵은 해를 보내면서 하는 인사말이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한글과컴퓨터 사전과 스마트폰에 탑재된 사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네이버 오픈사전만이 송년회를 ‘지난해를 보내며 반성하는 자세를 가진다는 뜻’이라며 망년회는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니 송년회로 쓰는 것이 좋다고 안내하고 있을 따름이다. 네이버 오픈사전은 네티즌들이 만든 것이다. 네티즌이 작성해 올리면 운영자가 검수를 거쳐 등록해준다. 정보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전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각설(却說)하고, 언제부터인가 ‘망년회’보다 ‘송년회’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적절하다. 이를테면 삶이 고단했던 예전에는 ‘잊고 싶은 일’이 그만큼 많았기에 ‘忘’이 필요했지만, 요즘은 ‘간직하고픈 추억’이나 ‘잊어서는 안될 일’이 더 많지 않은가.
올해도 잊고 싶은 일은 많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태가 그렇다. 반대로 ‘과기위원회 설립’이나 ‘스마트코리아로의 진행’, ‘IT강국 재건’ 등 내년에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할 과제들도 넘쳐난다. 모두들 연말 건강에 유의하면서, 보낼 것은 보내고 지킬 것은 지키는 ‘송구영신(送舊迎新)’하시라.
경인취재팀 차장
수원=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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