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종이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직원들의 보고가 물밀듯이 밀려왔다가 잠시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창문 밖을 쳐다보니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어느덧 관악산에도 단풍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다시 온갖 회의자료와 보고자료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탁자 위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를 답답함과 짜증이 몰려온다. 왜 우리는 종이를 없애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과거 10년 전부터 정보화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이제 곧 종이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전체 종이 소비는 연 1%씩 감소하는 것에 비해 아이러니하게도 종이문서로 사용되는 정보인쇄용지 소비는 매년 15% 이상씩 급증하고 있다. 아울러, 종이문서를 운송·분류·보관·검색·폐기 등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연 28조원에 이른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탄소배출량도 연간 1220만톤에 달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종이문서는 의사소통과 증거력을 담보하기 위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스스로 종이문서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중요시하는 관행이 쌓여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대부분의 문서가 전자적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이를 사용할 때는 굳이 프린터로 출력해서 종이로 제출·보관·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녹색성장위원회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녹색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자문서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상거래에서 발생되는 각종 종이원본을 최소 5년 이상 보관했으나, 앞으로는 전자화문서로 대체해 종이문서는 폐기(재활용)가 가능하도록 ‘상법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또한, 대면거래에 적합한 생체인식 등 각종 서명방법이 법적 효력이 인정되도록 관련 법규도 개선하려고 한다.

정부의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와 민간 공인전자문서보관소 간에 전자문서가 상호 유통·열람될 수 있도록 연계하고, 기업·개인 간 문서유통을 위해 ‘공인 e메일 사서함’ 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병원에서 발급하던 종이처방전 대신 처방전번호만 휴대폰 등으로 전송받고, 환자는 이를 약국에 제시하여 조제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과거의 처방내역도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의 종이 중심의 행정 관행도 과감히 개선하여 각종 발주사업, R&D사업 등에서 전자문서로 처리하고, 굳이 종이서류로 제출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한, 수출입실적증명서, 시험성적서 등 각종 종이증명서 발급도 단계적으로 전자문서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종이 중심의 업무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혼재되어 있는 종이문서와 전자문서의 어색한 동거는 전자문서로 일원화되어 빨리 정리되어져야 한다. 이런 방안들이 실현된다면 2015년에 총 10조원 이상의 종이·물류비용 절감과 프로세스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그린IT와 종이 없는 사회(Paperless Society) 구현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좋은 IT와 첨단 제품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제대로 관리하고 활용해야 그 가치와 효용성이 더욱 빛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DMB를 시청하고, 스마트패드로 e북을 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필요한 증명서를 종이로 출력하는 순간, 우리 자신은 허울만 좋은 얼리어답터로 전락한 셈이다.

조석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scho@mk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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