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각국의 기업가정신이 크게 퇴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업가 활동 수준이 높은 편이며, 창업 후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도나 켈리 뱁슨대 교수는 19일 `벤처콘퍼런스`에 참석해 `기업가정신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켈리 교수가 지난해 전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 결과로, 각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기업가 활동을 조사했다.
켈리 교수는 “기업가정신의 기본인 기회를 포착하려는 노력이 경제위기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경향은 경제성장률이 높은 잘사는 나라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선진국의 경우에는 창업 비율이 절반 이상 감소했으며 기회 추구형 창업보다 어쩔 수 없이 창업하는 생계형 창업이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기업가정신과 관련, 그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민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적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미디어에서 성공한 기업가를 많이 다뤄주고, 그로 인해 좋은 기업가와 창업, 성공벤처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기업가정신이 고용정책과 맞물려 경제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내다본 켈리 교수는 “한국 대학에서는 비학위과정으로 기업가정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사용정도는 낮은 편으로 정부 투자로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됐으나 아직 일반인 전체로 인식이 확산되지 않아 접근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창조경제시대의 기업가정신 활성화 방안`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이 약화한 원인으로 △선진국형 벤처구조의 시행착오 △`헝그리 정신` 약화 △사회적 분위기 약화 △교육 시스템 부재 등을 꼽았다.
한 교수는 “한국 벤처 붐은 생계형 창업이 아닌 도전정신에 기반한 선진국형 모델로 나타났지만 너무 빠른 확장으로 거품이 생기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도전 정신이 약화됐고, 기업을 통해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는 분위기도 따라서 약해졌다”고 밝혔다. 이의 사례로 교수와 연구원 등 전문인이 창업한 벤처기업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벤처 거품이 꺼지고 난 후유증으로 위험은 높은데 보상은 낮은 불균형 현상도 기업가정신 발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가정신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선 △시장 확대 △실패비용 완화 △공정거래 확립 △투자확대 △기업가적 태도 활성화 △기술사업화의 여섯 가지 요소가 선순환돼야 한다고 한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기업가정신이 줄고 벤처가 침체되면 창조경제 시대 우리나라의 장래가 위험할 수 있다”며 “규제 완화 및 해외 진출을 통한 시장 확대 및 엔젤 펀드 활성화 등 투자 확대와 함께 기업가정신 고취를 위한 교육훈련과 컨설팅이 패키지로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아키 수와 일본 나인시그마 대표는 `개방형 혁신을 구현하는 방법과 이익을 얻는 법`이란 강연에서 개방형 혁신이 벤처기업에 가져다준 장점과, 이를 위한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개방형 혁신은 마케팅 자원을 비롯해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벤처기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며 “대표적으로 최근에 관심이 크고,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개방형 혁신은 장점은 크지만 벤처기업 입장에서 도입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성공적인 개방형 혁신을 위해선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고 현재 기업의 위치와 목표까지의 차이를 인식해야 하고 또한 충분한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배 · 황태호기자 joon@etnews.co.kr
◆미니인터뷰-도나 켈리 뱁슨대 교수
“학생들의 인식을 바꿔줘야 합니다. 그들이 창업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경력)를 개발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도록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도나 켈리 뱁슨대 교수는 최근 대학생 등 한국 청년들의 창업의지가 약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미디어 그리고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넷스케이프를 창업한 마크 앤드리슨의 스토리가 언론에 많이 노출되면서 청년들의 창업에 대한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의 역할입니다. 대학도 중요합니다. 학생이 몇 억원을 갖고 있어야 창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돈으로도 리스크를 줄여 창업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게 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벤처사업가 재기 움직임이 활발한 것과 관련, 실패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정확히는 실패보다는 `재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실패 경험을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패를 교훈삼아 다시 시도했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는 실패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실패 이유의 대부분은 불확실성에서 온다”며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매니징(관리)하는 것은 중요하고, 불확실성을 예측하고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켈리 교수는 뱁슨대에서도 학생들의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비즈니스 계획 수립방법을 강조하기보다는 한번 창업해 직접 운영하는 것을 권장하고 지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업에서도 직원들이 기업가정신을 갖고 창업할 수 있도록 사내벤처를 적극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장단계에 있는 벤처기업의 CEO에게는 기업가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경영에만 매진할 것을 강조했다. “창업자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창업자로 변신해야 합니다. 기술개발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경우 CEO가 사외이사 자문단 등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자문을 받아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찾아냅니다. 그게 CEO의 역할입니다.”
이날 벤처콘퍼런스 주제 강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가정신이 많이 쇠퇴했다는 점을 강조한 켈리 교수는 “경기가 회복된다고 기업가정신이 꼭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며 “이때는 생계형 창업이 아닌 기회추구형 창업이 늘어날 것”이라며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경우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역설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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