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자리돔’이 위험하다

Photo Image

해양산성화 빨라져→산호초 주변 물고기 사망률 증가

“기후변화가 이대로 계속되면 산호초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생존에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행하는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매거진>은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 산성화로 ‘니모(Nemo)’가 위태롭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니모는 2003년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크라운피시(clownfish) 이름이다.

지난 6일자 <사이언스매거진>은 같은 날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결과를 인용해, 21세기 말이면 자리돔(damselfish)이나 크라운피시처럼 산호초 주변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심각한 생존 위험을 겪게 될 것으로 경고했다.

PNAS에 실린 연구결과는 현재 추세대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경우, 해양 산성화 속도가 빨라져 어린 물고기들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식자나 은신처를 알려주는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면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바다 표면에서 녹아들어 바닷물의 ph(용액의 수소이온농도 지수)가 줄어드는 해양 산성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이산화탄소 배출이 계속되면, 21세기 중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500ph을 넘어서고, 21세기 말에는 730~1020ph에 달한 전망이다. 그에 따라 바닷물의 ph도 지금보다 0.3~0.4단위 낮아지게 된다. 해양 산성화가 그만큼 심화된다는 뜻이다.

해양 산성화와 탄산이온 감소가 조개나 갑각류의 껍질과 골격 형성을 방해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들어선 해양 산성화가 일부 해양생물의 발육, 신진대사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해양생물의 개체수 감소를 부르는 이산화탄소 농도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 산성화가 물고기 개체수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는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제주 특산어종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자리돔이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에 따라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물고기 유충의 후각기능을 손상시키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재고, 후각기능 손상에 따른 물고기 유충의 행태 변화가 물고기 개체수 감소로 이어지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해양생물은 대부분 탄생 초기 플랑크톤과 비슷한 유충기를 거치는데, 유충기는 자연도태 원리에 따른 사망률이 가장 높은 탓이다.

먼저 연구진은 크라운피시 유충과 자리돔을 대상으로 산호초 환경에서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인 390ph부터 2050년 예상 농도 700ph과 2100년 예상 농도 850ph까지 다양하게 노출시키고, 포식자한테서 나온 화학물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했다.

실험결과 크라운피시와 자리돔 모두 500ph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700ph부터는 유충들이 포식자의 냄새를 좇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특히 850ph에서는 냄새로 포식자를 구별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고, 안전한 산호초 주변에서 벗어나 오히려 포식자를 따라가는 게 관찰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고농도 이산화탄소에 노출된 유충들은 현재 농도와 견줘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5~9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물고기가 적응할 수 있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한계점(threshold·역치)은 700ph이며, 850ph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2100년이면 해양생물의 종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사이언스매거진>과 PNAS는 이번 연구가 기후변화에 따라 바닷물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조개 및 갑각류뿐 아니라 물고기 유충의 생존 등 개별어종의 생존다양성과 해양생물의 다양성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실험에 쓰인 자리돔은 국내에서 제주도의 특산어종으로, 특히 제주사람들의 여름 보양식으로 사랑받아왔다. 매년 6월이면 제주 서귀포에서 자리돔축제가 열릴 정도다. 그러나 최근엔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자리돔 서식지가 동해 등으로 점점 북상하면서 제주도에서도 ‘귀한 몸’이 된 어종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 제주 앞바다는 ‘물 반 자리(자리돔의 제주 사투리) 반’이란 말이 통하기 어려워진 오늘날, 하루 빨리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리돔은 제주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경고하는 연구결과가 나온 셈이다.

재난포커스 (http://www.di-focus.com) - 이주현 기자(yijh@di-focu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