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들은 클러스터 속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경쟁력을 키운다.
이는 고기술, 고위험에 노출돼 있는 벤처의 특성상 스스로 기업 활동의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에 따른 높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또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정된 지역에서 다른 기업, 대학 및 연구기관과 밀접한 네트워킹을 통해 기업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클러스터는 국내 벤처산업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벤처산업의 태동을 이끈 발원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클러스터도 유기적이고 끊임없는 네트워킹과 영속성이 없으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국내 벤처클러스터의 효시로 불리는 포이밸리가 대표적이다. 포이밸리는 국내 벤처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 서울 서초구 양재 사거리에서 강남대로를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풍부한 연구개발 인력과 다수의 기업부설 연구소, 편리한 교통환경 등의 요인이 벤처기업을 유도하는 촉매제로 작용, SW 개발업체를 주축으로 통신기기 개발, 전기전자 관련 설비 및 기기개발 관련 업체들이 앞다퉈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이곳은 초기 자연발생적 벤처기업 클러스터로 가능성만 보여준 뒤 기업 간 네트워크 형성 부재로 점차 경쟁력을 상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에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국내 벤처산업의 심장부로 불렸던 서울밸리(테헤란밸리)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국내를 대표하는 벤처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울밸리는 1995년 전후로 안철수 연구소, 두루넷, 네띠앙 등 인터넷·정보통신 등 첨단 업종의 업체들이 강남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이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당시 최고 수준의 건물과 금융, 광통신 등 뛰어난 사업 환경 인프라를 갖췄던 서울밸리는 2000년을 전후로 네이버컴, 드림위즈, 엔씨소프트, 옥션 등이 입주하면서 국내 대표적인 클러스터로 성장을 거듭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현재 시점으로 가장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의 벤처 클러스터다.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절반가량이 이곳에 모여있다. 1960년대 국내 최초의 경공업 중심의 공업단지로 출발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2002년을 전후로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패션 디자인 등 중소·벤처기업이 앞다퉈 입주하며 국내 최대 규모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지방은 정부 주도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클러스터가 대부분이다. 이는 1990년대 말 당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자연발생적 클러스터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자 지방에도 이러한 클러스터를 조성해 벤처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이하 벤처촉진지구)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대학과 연구기관, 지원기관 등이 한데 몰려 있고 벤처기업이 밀집하거나 밀집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벤처촉진지구로 지정, 지원센터 및 공동장비 등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벤처기업의 집적을 유도했다.
현재까지 전국에 총 25개의 벤처촉진지구가 형성돼 지역 벤처산업의 거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의 13%를 차지하는 2548개의 벤처기업이 이곳에 밀집돼 있다.
지정 초기에 비해 성과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2002년 7억7000만원에서 2009년 63억원으로 8배 이상, 평균 고용인원 수도 10명에서 28명으로 세 배 가까이 각각 증가했다. 벤처기업 집적도는 같은 기간 10.8%에서 48.0%로 5배 가까이 높아졌고, 벤처기업 수도 1190개에서 2548개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중 포항벤처촉진지구와 전주벤처촉진지구는 성공적인 클러스터 사례로 꼽히고 있다.
포항시와 포스코, 포스텍이 주축이 된 포항벤처촉진지구는 전기전자·정보통신·생명공학 분야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무선 이동통신 기기 전문업체 와이팜과 천연세제 전문업체 슈가버블 등을 배출했다.
전북도와 전주시, 전북대가 주축이 된 전주벤처촉진지구는 영화영상산업, 생물생명산업 등 5대 역동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독립된 형태의 민간 운영기관인 ‘전주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발전협의회’가 설립돼 기업 밀착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전주촉진지구 내 첨단지구에 자사 브랜드를 가진 기업 위주로 입주시키고, 3년에 한 번씩 평가·관리하는 방식으로 스타벤처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조성한 만큼 벤처촉진지구가 진정한 클러스터로 발전하기까지 풀어야 할 숙제는 쌓여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촉진지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지방자치단체 등 운영주체의 인식 부족과 소극적인 예산지원이다.
송장준 연구위원은 “일부를 제외한 다수의 촉진지구 운영주체들이 정부에 의존적인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들은 촉진지구사업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갖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발굴해 수행하기보다는 중앙 정부의 지원이 있을 경우에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의 국비 지원이 종료된 2006년 이후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클러스터 내 벤처기업 밀집도가 낮은 것도 벤처촉진지구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5개 벤처촉진지구 중 절반이 넘는 14개 촉진지구는 입주 벤처기업 수가 50개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처럼 낮은 벤처기업 밀집도는 클러스터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중소기업연구원이 촉진지구의 네트워킹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촉진지구 내 타 기업 및 지원기관 활용도 점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활용도는 5점 만점에 2.7점을 기록했다. 많은 벤처기업이 촉진지구 내에서의 네트워킹 활동의 유용성과 만족도를 ‘보통’ 이하로 평가한 것이다. 이들은 네트워킹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네트워크 활동의 필요성이 낮거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마땅한 상대기업이나 지원기관이 없어서’ 등을 들었다.
벤처촉진지구 내 특화산업 연계성이 낮고 강력한 구심점이 없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올랐다. 중소기업지원연구원은 벤처 활성화를 위해 촉진지구 내 입주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우선적 지원, 촉진지구발전협의회 활성화, 촉진지구별 특화산업 집중 육성 등을 제시했다.
또 모태펀드의 촉진지구 펀드 조성 참여와 정부의 예산 지원 등을 통해 촉진지구 내 중소·벤처기업을 유인할 수 있는 자금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이에 중소기업청은 최근 벤처촉진지구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촉진지구별 운영 실태조사를 실시해 관리체제를 정비하고, 촉진지구 내 소통 체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지구 내 벤처창업을 촉진해 밀집도를 높이고, 신성장 동력산업과 연계, 활성화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백운만 중기청 벤처정책과장은 “촉진지구가 지역 내 벤처기업의 집적 거점으로 성장하고는 있지만, 일부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며 “앞으로 관련 부처와 협의를 거쳐 촉진지구 내 입주기업 우대방안 등을 담은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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