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녹색인증제 도입에 앞서 ‘이 정도 기술 수준은 보유해야 녹색인증을 받는다’며 발표한 ‘녹색기술 고시안’에 대한 업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기준이 기술개발 단계를 넘어서 매출을 올리고 있는 몇몇 분야와 기업에는 ‘이미 넘어선 낮은 언덕’이지만 정작 기술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미개발 분야와 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오르지 못할 산’이라는 것이다. 녹색인증제가 이미 잘나가는 대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녹색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관련 업계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살피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
◇신기술 분야 중소기업들엔 높고=박막태양전지나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 등 정작 지원이 절실한 신기술 분야에서 녹색인증제가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높다. 박막 태양전지의 경우 고시 기준 통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막 태양전지 제조업체의 A임원은 “녹색인증제에서 박막태양전지의 기준에 대한 부분은 무리수인 것 같다”며 “아니면 높은 수준을 설정해 놓은 상징적인 기준인지”라고 반문했다.
실리콘박막태양전지의 경우 아몰포스실리콘 싱글형의 경우 7%가 현재 국내 최고 효율이고, 복층구조(TANDEM)는 9∼10% 정도다. 11% 이상의 효율을 달성해야 한다면 싱글형은 자동으로 제외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단층기준 효율이 두 자릿수를 돌파한 양산제품은 아직 없다. 실험실 수준에서 효율 10%를 넘긴 적은 있지만 양산 기술이 까다로운 탓에 실 생산에 적용하면 효율이 급격하게 저하된다.
특히 상용제품 효율이 10% 안팎인 구리·인듐·갈륨·셀레늄(CIGS) 태양전지의 경우 모듈 효율 14% 이상이 기준으로 제시됐다. 업계 선두인 독일 부르스솔라도 실 효율은 12%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CIGS 태양전지의 경우 이제 막 10%대 벽을 통과했다.
A임원은 “얼마전에 그린홈 100만호 보급 사업에도 박막태양전지는 제외시킨 경우가 있었다”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제품이다 보니 차별대우가 많아 힘든데, 녹색인증도 업계의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이런 식으로 가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박막 태양전지 업계 관계자는 “CIGS 태양전지 효율은 단 1% 올리는데 짧아도 수년이 걸린다”며 “국산 제품이 이 기준을 통과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CCS 기술 기준도 가당치 않다.
CCS 기술을 연구 중인 한전 전력연구원에 따르면 CCS부문의 녹색인증 기준은 연구원에서 계획하고 있는 2015∼2017년 최종목표 수준에 버금간다.
전력연구원 관계자는 “녹색인증이 제시한 처리용량이나 이산화탄소 제거율 80∼90%는 거의 최고이고, 상용화 단계의 수준”이라며 “90% 이상 올라가면 1% 올리는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녹색인증의 추진 목적이 관련 산업이나 기업을 키우고 이를 확대하기 위한 지원인데, 십수년을 연구해 최고수준이 달성돼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받겠느냐”며 “이런 식으론 목적을 벗어난 쓸모없는 탁상공론일 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LED조명 등 녹색인증 제품과 관련된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사업 지원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LED 가로등의 경우 ESCO 사업으로 지원받아도 5년 동안 35%의 이자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에너지 절감부분을 오랜 기간에 걸쳐 회수해야 하고 이를 설치한 기업도 투자비를 되찾는 데까지는 적지 않은 부채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조명업계 관계자는 “올해 1300여억원에 불과한 ESCO 자금으로는 3조원 가량되는 LED시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의 지원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상용기술 분야 기업들은 ‘관심 없어’=“녹색인증제가 뭐죠? 그거 받으면 무슨 혜택이라도 있습니까?”
신기술 분야와 다르게 어느 정도 산업화 궤도에 오른 태양광·풍력·연료전지·LED 등 녹색인증 분야에서 회사명을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업체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이미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들은 녹색인증제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다.
한 LED 칩 생산업체 관계자는 “녹색인증 기술 기준은 이미 넘어섰지만 사업을 수행하고 입장에서 봤을 때 녹색인증제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며 “은행에서 자금 융통이 가능하다면, 대단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 녹색인증을 굳이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발전용 연료전지업체 관계자는 “기술 수준이 높지 않지만 녹색인증이 요구하는 총 매출액 대비 30% 녹색상품 비중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 발전용 연료전지 선도 기업이지만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연료전지만으로 높은 매출비중을 채우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녹색인증 기술 기준을 국산화율이나 투자비 규모 등으로 다변화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태양전지 생산업체나 풍력발전기 생산업체들의 반응도 “우리가 녹색인증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모습이다.
생산제품의 국내외 인증을 받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업체들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인증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녹색인증제가 관련 기업이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제도로 보완되지 않는다면 정부와 일부 기업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기술 기준 설정 내막 ‘알 수가 없다’=물론 정부가 녹색인증을 위한 기술 수준을 마구잡이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강혁기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시장과 과장은 “에너지기술평가원 등 각 분야별 R&D전담기관과 함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산업체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R&D 전담기관이 현재 녹색기술 각 분야별로 기술개발 수준을 정확히 가늠하고 있다는 판단아래 이들이 제시한 세계 최고수준의 약 30% 정도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기술 수준은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만들어졌으니 이견이 있다면 그쪽으로 문의하라는 것. R&D전담기관이 기술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기술성·첨단성·시장성 등이다.
그러나 에너지분야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강도규 에너지기술평가원 녹색산업육성팀장은 “R&D 기획평가와 같은 방식으로 녹색기술 기준에 대해 설정했다”고 말했지만 “기술 기준 설정과정인 자문단회의에 대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녹색인증제 주관부처인 지식경제부는 ‘기술 기준 설정은 R&D 전담기관이 보장한다’고 하지만 R&D 전담기관은 기준 설정과정에 대한 부분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업계는 기술 기준 설정이 올바르게 검토됐는지 확인할 수가 없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준대로 인증을 받으라는 것이다. 발표된 녹색인증 기술 기준이 어째서 세계 최고 대비 30% 수준인건지에 대한 설명을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업계의 현황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기술 기준에 대한 의견을 공청회 등을 통해 추가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강 과장은 “지난 10월 발표된 녹색인증 기준에 대해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많은 기업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의견은 관련 분야별 전문자문단에서 검토하고 있고,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바로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이외에도 녹색인증 기술 기준을 매년 분야별 기술발전 현황을 반영해 수정해나갈 계획이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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