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류·세제 등 생활용품을 제조·판매하는 생활소비재(CPG)업계는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CPG 특성상 가격과 매장 내 진열 위치, 판촉전에 민감하다. 소비자들은 전단을 받아들고 오늘의 특가상품, 한정할인 판매 상품을 찾는다. 업계는 지금까지 협력 관계였던 거대 유통사와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불황기를 지나오면서 가격 경쟁력과 유통매장 자체 브랜드라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갖춘 PB(Private Brand) 상품의 판매가 수직상승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사용후기를 공유한다. 기업의 불친절한 고객 대응이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 퍼지면서 불매운동을 당하기도 한다. 식품에 이물질이라도 유입되면 고객센터 직원이 확인 방문하기도 전에 이미 사진이 인터넷에 게재되고 한 번 올려진 이물질 사진은 순식간에 재확산돼 기업이 쌓아온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린다. 환경의 변화는 생활소비재업계에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소비자보다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긴장감을 일으켰다.
판매장에서는 시시각각 전투가 벌어지고 이 전투 현장의 정보를 얼마나 신속히 입수, 대응하는지가 제품 매출을 좌우하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시장의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 정보를 경영과 실무진이 의사결정에 바로 반영할 수 있도록 모바일 업무 환경과 통합 커뮤니케이션(UC:Unified Communication)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현장 정보는 마케팅과 영업전략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판매 현장에서 소비자들의 손끝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파악해 이를 다시 생산·연구 현장의 정보와 연계시킨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소비자가 있는 시장에서 직접 수집한 정보만큼 생생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별도의 조사원과 시간을 들여 실시하던 시장조사, 고객 만족도 설문조사를 대신해 판매 현장에서 소비자 수요 조사가 매일 같이 실시되고 있기도 하다.
◇현장의 살아있는 정보를 수집하라=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형 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물론이고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확대로 소비자의 선택권은 넓어지고 있다. PB 상품과의 경쟁 등에서 최종 선택을 받아야 하는 CPG기업들의 경쟁 환경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넘치는 제품 중 선택받지 못하고 움직이는 소비자의 마음을 앞서 읽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이를 위해 소비자와의 접점인 유통업체들 및 대리점 등 판매 현장에서 생생한 정보를 흡수해야 한다. 경쟁사가 1m 옆 가판에서 100원만 싸게 팔아도 막대한 손해를 입을 정도로 시시각각 가격에 민감한 CPG업계의 판매 환경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이제 손수 현장 데이터 수집에 나서고 있다. 판촉 여사원들을 위한 별도 시스템을 적용해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과 경쟁사 신제품 정보 및 이벤트 정보 그리고 판매 현황을 집계해 본사 영업전략 및 생산체계와 연결시키고 있다. 주요 유통 현장에 배치된 판촉사원들이 판매 권고자 역할을 넘어 시장의 촉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올 초 사내 임직원을 위한 모바일 데스크를 오픈하면서 유통사 영업 현장에서 600여명의 판촉 여사원이 모바일 단말기를 이용해 바로 주문을 넣도록 하고 있다. 또 애경산업은 올 상반기 오픈한 ‘판촉여사원시스템’으로 현장의 판촉 여사원들이 판매 현장의 정보를 올리고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 및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최종국 AKIS 생활용품팀장은 “진열정보와 결품정보, 경쟁사 프로모션 정보 등 현장의 정보를 입력해 영업사원이 이를 분석하고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제품 주문 및 도착 등 전화로 주고받던 정보를 모두 시스템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유니레버코리아가 현재 개발 중인 필드정보시스템(FIS:Field Information System)도 유통업체와 각 대리점 현황 정보 즉 소비자 접점의 정보를 현장 판매자가 입력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곧 가동할 계획이다.
각각 900여개에 달하는 뷰티플렉스·아리따움 등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대리점 시스템을 통한 정보 수집도 중요해졌다. LG생활건강은 내년 상반기까지 전 뷰티플렉스 지점의 판매시점관리(POS) 시스템을 교체하고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도록 고도화할 계획이다. 2년 전부터는 HG대리점시스템을 통해 2차, 3차 유통 점포의 제품 입점정보와 진열정보, 판매 데이터 등을 수집하고 있다. 심일섭 LG생활건강 파트장은 “소매점 판매량 등 현장 정보 확보가 어려워 기존 CS 환경의 대리점 시스템을 웹으로 통합하고 모든 데이터를 중앙 서버에 저장 및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B2B 고객인 유통사뿐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한 B2C 차원 소비자 정보의 과학적 분석도 중요하다.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별 고객정보의 통합관리를 위한 통합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설화수·라네즈·이니스프리 등 브랜드별 고객정보를 모두 통합해 마케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제일모직은 마이닝 기법을 동원해 CRM 분석 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변수까지 고려한 다차원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CRM 고도화를 내년 상반기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개발 단계부터 소통 위해 ‘PLM’ 화두=현장의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를 빨리 신제품 개발 및 폐기와 연계해야 한다. 수많은 최소유지상품단위(SKU)를 관리해야 하는 CPG 기업들의 공통 화두는 많은 제품의 탄생과 단종을 동시 다발적으로 빠르게 관리하면서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 히트할 것인지 재빨리 파악해 제품 개발 기간을 앞당기고 인기가 떨어진 제품은 재빨리 폐기해 신제품을 위한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매출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한 해결책이 제품의 탄생에 해당하는 개발 단계에서의 소통과 협업이고 이를 위한 솔루션으로 제품수명주기관리(PLM)를 검토하는 CPG업체들이 늘고 있다.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군을 많이 보유한 식음료업계에서 특히 개발납기 단축과 정보공유를 위한 PLM 요구가 높다. 롯데칠성음료는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칠성사이다’에 대한 축적된 정보가 없는 등 정보 축적과 공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올 하반기 국내 음료업계 최초로 PLM 시스템을 가동했다.
지난해 말 PLM 시스템을 가동한 농심에 이어 올 하반기 대상도 잇따라 PLM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어 CJ제일제당도 PLM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네슬레는 2년 전부터 제품 기획과 관련 포트폴리오 관리에 PLM 솔루션을 도입해 제품 개발 역량을 높이고 시간도 단축하고 있다.
시장의 반응 같은 외부 정보부터 개발 과정 등 내부 정보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모든 개발과정을 각 부문 간에 공유할 수 있는 PLM 도입으로 빠른 신제품 출시와 더불어 단종제품 관리 역량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종이에 기록했던 히트상품의 개발 정보가 후대로 넘어오면서 남아 있지 않아 지식의 축적 및 활용이 안 됐던 것도 큰 이유다.
팬틴·비달사순·페브리즈 등 다수 브랜드를 보유한 P&G는 지난해 협업용 PLM 패키지를 도입해 자사 연구개발 시스템인 표준협업시스템(Corporate Standards System)의 협업기능을 강화했다. 존 플라납 P&G 이사는 올 초 CIO BIZ+와 인터뷰에서 “다양한 문서를 모든 사람들이 원터치로 볼 수 있도록 구조화된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만든 것”이라며 “수천개의 제품 스펙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구 버전의 스펙으로 제품을 만들어 피해를 보던 일이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의류업체의 PLM 활용도 눈에 띈다. 게스(Guess)는 올 상반기 PLM을 도입해 자재구매 효율을 높이고 개발기간을 단축했다. 글로벌 각지 데이터를 소통시키고 디자인 및 개발과정부터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며 디자인 과정에서도 생산팀·샘플제작팀과도 협업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이크 레리츠 게스 CIO는 “양질의 제품을 빠른 시간에 만들어내는 제조업계의 요구사항을 실현시키는 PLM 솔루션은 첨단 IT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아모레퍼시픽·애경산업이 PLM 프로젝트를 앞두고 패키지를 검토 중이며 내년 초 시스템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소통 경영 위한 ‘모바일 오피스’ 확대=CPG 업체들이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선택하고 있는 것은 모바일 업무 환경이다. TV 드라마와 광고, 온라인 뉴스 및 광고매체 등 실시간으로 다양한 정보 환경에 노출되는 소비자보다 더 빠르게 의사결정해야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 e메일·전화·메신저와 영상회의를 연계해 실시간 상호 의사소통하고 영업부터 마케팅·생산·구매 등 타 부서뿐 아니라 임원과 사원 간에도 실시간으로 협업하는 등 의사결정 체계를 혁신하고 있다.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업은 아모레퍼시픽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UC 프로젝트에 돌입해 올 하반기에 임원과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24시간 협업환경을 조성했다. 김진우 아모레퍼시픽 상무는 “사무실 내외 어디에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 사람 중심의 협업환경을 만들 것”이라며 “일하는 방식과 사고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세린·폰즈·도브·립톤 등 다수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유니레버는 지난해 전 세계 임원들에게 블랙베리폰을 지급해 어디에서도 e메일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적 생활용품기업인 킴벌리클라크도 유무선융합(FMC) 및 UC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 한국 내 투자회사인 유한킴벌리도 내년 이후 모바일 업무 환경 조성에 돌입할 계획이다.
세제 스파크·샴푸 케라시스 등의 제품을 판매하는 생활용품 전문기업 애경산업도 IT 자회사인 AKIS에서 내년 초 임원과 팀장급을 대상으로 모바일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아이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식품기업인 CJ제일제당과 풀무원도 인터넷전화와 그룹웨어·PC 메신저 등을 연동하는 U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CJ제일제당은 올 초 80여명의 임원에 옴니아폰을 지급하고 그룹웨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모바일 데스크 시스템을 오픈한 데 이어 5700여대의 인터넷전화·PC·영상회의 등과 연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상몽 CJ제일제당 상무는 “메일, 결재, 게시판, 경조사 등 그룹웨어에서 제공하고 있는 8개 서비스를 모바일 환경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진행 중인 FMC 프로젝트를 완료 후 본격 UC 가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풀무원은 올 연말까지 모든 사내전화를 IP전화로 교체하고 적합한 스마트폰을 검토하는 등 기반 인프라를 조성한 후 내년부터 UC 구축 프로젝트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의류업체 제일모직도 올 상반기 60여명의 임원에게 옴니아폰을 지급, 이를 통해 그룹웨어 마이싱글(my Single)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메일 수·발신 및 임직원 조회, 결재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김강연 제일모직 정보전략팀장은 “향후 매출, 주문 등 업무용 주요 정보까지 모바일 환경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실제 사용자들이 많이 활용하는 업무 시스템 위주로 탑재시켜 모바일 업무 환경이 필요한 영업사원들에게 부가가치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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