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와 LCD 산업이 이례적인 동반 호조세를 누리고 있다. 통상 비수기인 연말에도 불구하고 반도체·LCD 가격이 나란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으며 내년에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업황을 가늠하는 또 다른 지표인 설비 투자 또한 두 업종 모두 우리나라 업체들 주도로 되살아나 후방 산업군도 본격 회생하는 추세다. 과거 수년간 반도체와 LCD 중 한쪽이 좋으면 다른 한쪽이 나쁜, 사이클 교차가 사라지고 동조화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세계 시장 1위인 한국 기업들의 ‘승자 효과(winner effect)’가 현실화하고 있다.
◇반도체, 오랜 침체 끝=수급 측면에서 D램은 최근 2년간 신규 투자 실종에 따른 공급 부족이 이어졌다. 반도체 가격은 하반기 들어 급상승했으며 비수기인 이달 하순에도 안정세를 유지했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2 D램 주력 제품인 1기가비트(Gb) 667㎒ 고정거래가는 2.38달러로 이달 상반기와 같았다. DDR3 주력 제품인 1Gb 1333㎒ 가격도 2.25달러로 보합세를 나타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메모리 가격이 충분히 높은 수준이고 비수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세라는 점이다. 내년에도 나빠 보이지 않는다.
김성인 키움증권 IT팀장은 “최근 2년간 치킨게임에 따른 혹독한 구조조정과 신규 투자 동결로 공급 부족 양상이 지속된다”면서 “D램은 다음 달 인위적인 가격 조정 가능성이 있지만, 내년 1분기에 다시 공급 부족 상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승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연말에도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이 안정적인 것은 현 수급 상황을 볼 때 계절적인 비수기 영향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년간 바짝 졸라맸던 설비 투자가 본격 재개된다는 점에서 후방산업군도 동반 기지개를 켰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내년도 반도체 보완 투자에만 각각 5조5000억원과 2조원 안팎의 설비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업황에 따라 추가 투자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장비 업체 관계자는 “두 업종의 대규모 설비 투자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2000년대 들어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LCD, 단기 급락 후 안정세=LCD 업황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 반짝 ‘지옥’을 경험한 뒤 안정적인 호조세를 계속 이어갔다. 10월부터 대형 LCD 패널 가격이 급락하는 것이 통상적이었지만, 올해 하락 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이달 중순 32인치 TV용 패널 가격은 206달러로 지난달(210달러)에 비해 1.9% 떨어지는 데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 IT용 패널은 10%까지 하락했다. 다만 모니터·노트북PC 등 IT용 패널 가격은 5% 이내의 내림세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안현승 디스플레이서치코리아 사장은 “세트 업체들이 일찌감치 재고 조정에 나섰지만 중국·미국·유럽 등지에서 연말에도 꾸준히 수요가 이어진 결과”라며 “비수기가 지속되는 내년 1분기에도 가격 하락 폭은 적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이례적인 대규모 설비 투자도 예정됐다. 국내 LCD 업체들의 대중국 투자와 양산 능력 선두 경쟁이 맞물린 결과다. 안 사장은 “내년 비록 일부 공급 과잉이 나타나더라도 기술과 양산 능력, 마케팅 역량에서 앞선 한국 LCD 패널 업체들은 선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석·윤건일기자 js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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