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기업이 꼭두각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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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세종시 해법과 관련해 기업들 줄세우기가 한창이다. 전 정부에서 유행했던 말처럼 ‘이쯤 되면’ 등 떠밀려 가는 기업까지 나올 법한 상황이다. 누가 보더라도 자의보다는 타의가 크게 작용한다. 정부 확정 계획조차 나오기 전인데 기업들 실명까지 거론하며 세몰이 형국으로 몰아붙인다. 국민적 공감과 합의, 가치 공유가 먼저인데 기업들을 앞세워 “이 정도 패면 받을래? 안 받을래?” 하는 식이다.

 물론 드러난 모양새는 기업들이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세종시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역 투자 확대 방안이나, 수도권 기업 지방 이전 혜택 방침에 콧방귀도 안 뀌던 기업들이 세종시 이전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느니, 전략 방안을 짜고 있다느니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이는 외견상 모습일 뿐이다. 한 꺼풀만 들춰 보면 거론되는 기업 대부분이 당장 또는 가까운 미래에 커다란 인허가나 신규 사업권과 맞물려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몇몇 그룹은 이미 정부로부터 커다란 선물을 받고, 보답을 준비하던 차다. 정부가 크게 압박하지 않더라도 기업을 충분히 움직이게 할 만큼 매력적인 ‘딜’도 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기업을 대하는 정부의 시각과 태도다. 그릇된 어젠다라면 언제든 바꿀 수 있고, 바꾸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부작용, 논란을 잠재울 책임을 전적으로 기업들에 지우는 것은 전제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최근 들어 세종시 문제에서 정부는 오히려 한 발 빠져 있다. 다음 달까지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오히려 느긋한 태도다.

 반면에 무대 전면에 선 것은 기업이다. 기업이 국민의 표를 얻으려는 듯, 선거 운동을 하는 격이다. 이제 막, 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몸을 털고 세계 시장으로 뛰어야 할 기업들이 ‘생뚱맞은’ 경쟁 무대에 선 꼴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등을 떠밀기 전에 우선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가장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일로 중앙행정기관 중 세종시로 옮겨도 행정, 제도상 문제가 없는 부처 몇 곳을 선정해 먼저 움직이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덕과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연구기관, 대학들을 중심으로 후차적인 이전 계획을 짜야 한다.

 이렇게 기업에 필요한 연구개발(R&D) 인프라와 정책, 산업, 기술 관련 생태계를 꾸려 놓고 나서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기업들에 저가의 용지 매입권을 부여하는 것도 그때 가서 제시할 수 있는 협상카드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일의 선후를 구분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가는 지금보다 더 큰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 정부는 ‘기업 친화(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창업 문패로 내걸었다. 정부가 기업이 뛸 수 있는 판을 벌이고,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세종시 해법을 놓고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기업도시를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 출발 때 내걸었던 기업을 얼마나 존중하고, 뛰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말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