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 설땅 좁아진 韓人 과학자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7년 8월부터 2009년 8월까지의 실업률 통계

 위기의 미 한인 과학기술자들, 탈출구가 없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이에 따른 정리해고로 많은 과학기술자가 고통받고 있으며, 한인 과학기술자들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선 통계를 살펴보면 그 고통이 얼마나 장기화하고 있고 심각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정리해고는 올 초부터 다소 주춤해졌으나 8월 실업률이 9.7%에 이르렀으며 이는 1983년 이래 최고치에 해당한다.

 7월 실업률이 9.4%로 약간 떨어졌을 때만 해도 실업률의 전반적인 상승세가 꺾였다고 전망한 사람이 많았다. 경기 회복 기대에 부응하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으나 한 달 만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끝없는 정리해고 행진=미 노동부 통계를 살펴보면 실업자가 지난 한 달간 44만6000명 증가해 전체적으로는 1490만명에 달한다. 2007년 12월 침체가 시작된 이후로 실업자는 740만명이 늘었고 실업률은 4.8% 늘었다.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흑인과 히스패닉의 실업률이 각각 15.1%, 13.0%인 것에 비해 한인이 포함된 아시아인은 평균 이하인 7.6%에 불과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0대들의 실업률이다. 무려 25.5%에 달하며 이는 정부에서 관련기록을 모으기 시작한 1948년 이후 최고치에 해당한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 기업들이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거나 진행 중이라는 소식은 더 이상 충격적인 소식이 되지 못 한다. 수천명 혹은 수만명의 정리계획들이 난무하다 보니 다들 무감각해진 탓이다.

 포브스에서 매달 발표하는 미국 500대 기업의 정리해고 지표를 살펴보고 있으면 세계적으로 큰 기업들이지만 다들 쉴 새 없이 직원들을 구조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재직 중인 다우케미컬도 예외일 수 없다. 지난 7월 루이지애나에 있는 공장 세 개를 폐쇄하느라 2500명을 정리한 것을 포함, 전체적으로 1만명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일이 멀리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소속된 전자재료 부문에서도 많은 사람이 정리되고 있다. 나와 같은 곳에 있던 동료들도 대상에 포함됐다.

 ◇우수 해고 인력 국내로 유턴=앞서 언급했듯이 한인 과학기술자들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는데, 중부의 유명 IT 기업에 다니고 있는 지인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힘겹게 구제된 후에도 전사적인 연봉 삭감으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서부의 반도체 회사에 근무 중인 지인들은 근무일수 감소로 연봉이 자연스럽게 줄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이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쉽게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침체기에는 많은 인력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어 쉽게 다른 회사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많은 한인 과학기술자들이 취업비자(H1B) 상태로 체류하고 있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고 재취업이 요원할 시에는 어쩔 수 없이 미국을 떠나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 실제로 많은 수의 한인 과학기술자가 귀국길에 오르고 있으며 귀국 이후 삼성이나 LG 같은 국내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인사담당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전에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고급 인력들의 이력서를 최근 많이 접하고 있다고 한다.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업계로 진출을 원하는 수많은 유학생도 이러한 어려움을 몸소 겪을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많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하고 있는 마당에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많은 기업들이 취업비자 후원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즉 졸업 후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를 통해 취업을 하고 OPT 기간 동안 취업비자를 후원받아 정착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었으나 취업비자를 후원받는 것이 필요한 구직자들을 아예 고용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고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그 이유다.

 ◇악화되는 고용 안정성=정리해고가 만연하면서 이전과 달리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보유한 인력이 시장에 넘치고 있다. 이는 취업시장으로의 진입을 더욱 어렵게 해 한인 구직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졸업을 늦추거나 포스트닥터(포닥, 박사 후 과정) 자리를 구하려는 이들이 늘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경기침체로 많은 교수의 연구실 재정 상황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는 사례가 늘었고 같은 이유로 신규 포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때도 많다. 기업연구소에서도 포닥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귀국하는 사람들로 국내기업의 인사관련자들은 전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한 회사 내에서의 고용안정성은 한국에 비해 낮지만 사회전반적인 고용안정성은 높은 편이다. 이는 옮겨갈 수 있는 회사가 많고 대우가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좋고 나이가 많더라도 오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일반론은 더 이상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정리해고 후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해도 받아주는 곳이 전에 비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전반적인 경기가 회복돼 한인 과학기술자들이 소속돼 있는 회사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고용안정성도 높아지게 되기 바란다. 이렇게 되면 신규진입 인력도 많이 늘어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스턴(미국)=이재형 다우케미컬 연구원(공학박사) yijh00@alum.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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