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桑田碧海)’
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한 G밸리의 변천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다.
1960년대 국가 수출을 진흥할 목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산업단지가 구로 일대에 만들어진다. 이것이 지금 G밸리의 첫 모습이다. 초기 구로동은 서울 중심가 재개발 과정에서 이주한 난민촌 지역이었다. 90%가 국유지였고 주로 노동집약적인 섬유·봉제 업체들이 들어섰다.
1977년에는 국가 수출이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넘어섰고 이 지역에서만 1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로공단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 국가 수출의 10% 이상을 담당했다. 1단지와 3단지를 연결하는 교각이 ‘수출의 다리’라고 이름붙여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노동집약적 산업인 섬유와 조립금속 업체들이 대거 지방과 동남아, 중국 등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일부 공단의 공동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는 1997년 수도권 내 최고 입지 여건을 갖춘 구로지역을 첨단산업기지로 개편한다는 목표아래 ‘구로산업단지 첨단화 계획’을 고시하게 된다. 구로동 일대의 산업 변혁을 예고한 변곡점이다.
90년대 후반부터는 고비용·저효율로 경쟁력이 약화된 제조업단지를 벤처와 연구개발, 정보지식산업 중심의 첨단산업단지로 구조개편하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입주기업의 생산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민간기업의 자율적 업종전환과 대체입주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2000년에는 산업단지공단 키콕스 벤처센터가 건립됐고 지금 사용 중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명칭이 공식 선포됐다.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공식 이름이 변경된 것이다. 벤처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입주업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전통 제조업 기업은 줄어든 반면 첨단 IT기업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타급 기업들도 강남시대를 접고 G밸리로 대거 유입됐다.
최근 G밸리는 빌딩 숲을 연상시킨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찾기 어렵고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곳곳에서 문화공연이 열리고, 건물 분수대 주변으로 커피잔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띈다. G밸리는 이제 옛 제조업체 생산기지가 아니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많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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