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규제에 신음, 부작용에 대한 색안경 벗어야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사건 직후 각 언론은 일제히 범인을 ‘방에 틀어 박혀 폭력적인 총쏘기 게임에 열중하는 외톨이’로 묘사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2005년 경기도 연천 모 부대에서 총과 수류탄으로 동료들을 살해한 ‘김일병 사건’ 역시 “게임처럼 상황을 만들고 싶어하는 ‘리세트(reset) 증후군’에 의한 범죄”라는 예단이 나왔다.
2006년 1월 모스크바 유대교 회당에서 무차별 폭행 사건을 일으킨 청년 범인을 가리켜 ‘게임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좀비’라는 묘사까지 등장했다.
한국·러시아·미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공통점은 무차별적인 범죄라는 점과 그 배후로 게임이 지목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끝내 게임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버지니아공대 진상조사위원회는 최종 보고에서 “조승희는 폭력적인 게임을 하지 않았고 룸메이트들도 그가 게임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며 “대학의 불충분한 대응과 조승희의 정신적 문제”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김일병 사건에 대한 국회 조사위원회나 러시아 사건의 수사과정에서도 게임의 연관성은 단 한마디도 거론되지 않았다.
세계 인구 3억명이 즐겨하고 우리나라 인구 10명 중 7명이 이용하는 가장 대중적인 여가 문화. 연간 자동차 8만대 수출과 맞먹는 외화를 벌어들이고 2012년 세계 3대 게임강국으로 도약 가능한 고부가가치 산업. 역동적이고 활기찬 게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같은 찬사 이면에는 언제나 폭력, 사행성, 범죄의 온상이라는 그림자가 붙어 있다.
전자신문이 미국·독일·일본·중국 해외 4개국을 현지 취재하고, 총 3000명의 5개국 게임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게임은 그 긍정성과 잠재성을 갖추고도 문화 콘텐츠로서의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화 시민권이란 콘텐츠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균형 있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유독 게임만 등급제, 시설 규제, 요금 이용 한도, 청소년보호법 등 온갖 규제로 꽁꽁 묶여 있다. 표현의 자유가 가장 억압받는 분야도 게임이다.
해외에도 게임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나 게임을 여가문화로, 문화콘텐츠로 인정하고 이를 건전하게 즐기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협회(ESA)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가정 67%가 게임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모의 절반 이상이 자녀와 게임을 즐긴다. 독일 게임 자율규제 기구인 BIU의 올라프 볼터스 대표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문화를 위해 전문 교육기관을 두고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며 “해마다 5만권의 게임 가이드북을 발간하는데 부모 대부분은 그것을 숙지해 자녀를 지도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변화는 시작됐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하고 자란 이용자를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가 최근 1000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게임 대중화 1세대인 30대는 이용시간, 인지 및 태도, 접근성 등에서 사뭇 다른 패턴을 보였다. 30·40대 게임 이용자 가운데 자녀들과 함께 게임하는 비율이 72%에 달했으며 자녀에게 게임을 추천하겠다는 비율도 비 이용자보다 4배 높게 나타났다.
게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적 시각을 바꿀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임의 유용성 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스콧 피셔 교수는 “게임은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사회성과 도전정신을 배우는 장”이라며 “게임은 앞으로 차세대 교육·훈련 도구, 리더 훈련장으로도 더욱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민 성균관대 교수는 “게임이 미치는 악영향이 있다면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특정 부분만 떼어 확대 해석하는 오류는 피해야 한다”며 “게임 사용자들의 자율적 노력을 독려해 게임이 문화 시민권을 얻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