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View Point’:CIO칼럼-`조선 전용 PLM시스템` 개발 급하다

 2012년 8월 어느 날. 중동에서 원유를 가득 실은 대형 유조선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향했다. 그런데 벌써 두 시간째 예고 없는 강한 돌풍을 동반한 거친 파도가 배 앞머리를 강타하고 바닷물이 갑판 위로 넘나든다. 선장을 비롯해 모든 선원들이 비상상태에 돌입했지만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몰라 참 난감한 상황이다. 배를 되돌리자니 엄청난 파도에 배 옆구리를 노출시켜 오히려 배가 뒤집어질 것 같고, 그냥 가자니 배 선수가 깨져 나갈 것만 같다. 진퇴양난인 것이다.

 이때 선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바로 선박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시스템. 그는 PLM 시스템의 구조해석 모델을 열고 시스템에서 안내하는 대로 각 화물창의 적재상황, 배의 속도, 파도의 방향, 주기 및 파고 등을 입력했다.

 시스템이 몇 초간 깜박이더니 ‘위급상황!(Urgent!)’ 표시와 함께 종합적인 상황 해석 결과를 보여준다. ‘지금 즉시 3번 화물창에서 4번 화물창으로 기름(화물)을 옮기고, 선수탱크에도 해수를 가득 실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속도는 반으로 줄이라’는 긴급 지시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우조선해양(DSME)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DSME의 PLM은 구세주!’

 이 이야기는 향후 구축될 DSME PLM 시스템의 가상 시나리오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PLM 시스템은 배의 일생(설계, 생산, 운항) 동안 생성되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모으고 정리해 뒀다가 나중에 필요한 때 필요한 방식으로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이 시나리오는 조선소에서 설계 단계에 실제로 수행한 구조해석 관련 정보를 나중에 실제 운항 시에 잘 활용한 예다.

 한국 조선산업이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존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제품 생산이라는 기존 업의 특성에다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가해야 할 때다. 그런 측면에서 위의 PLM 시스템은 조선산업에서 중요한 연구과제임에 틀림없다.

 이에 최근 들어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PLM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조선소는 그동안 컴퓨터지원설계(CAD)와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의 활용도가 높아 정보화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지만 PLM은 아직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조선 PLM은 일반 PLM과 달리 조선 영업에서부터 설계, 생산, 운항, 유지보수, 검사, 폐선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의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여기에 서비스 개념을 추가해서 적재적소에 정보와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선주들은 선박 건조비용 최소화에만 초점을 둬 왔다. 최근에는 수명주기비용(LCC) 최소화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추세다. 더구나 국제해사기구(IMO) 등에서 환경 관련 법규를 더욱 강화하고 있어 선박 운항 중에 부담하는 제반 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소들은 ‘조선 PLM 시스템’을 선박 기획·계약에서 폐선까지 필요한 정보와 관련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해 LCC를 최소화하고 선박의 안전과 환경을 보호하는 선박 종합 서비스 센터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즉 조선 PLM 시스템을 통해 한국 조선산업을 십 빌더(Ship builder)에서 십 콘텐츠(Ship Contents)를 종합 관장하는 영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계까지 조선 PLM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애로 사항이 많다. △선박 설계, 건조, 운항 등 각 단계에서 생성, 소요되는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계시킬지 △각 단계에서 생성되는 정보를 타 프로세스에서 공유하고 사용하려면 어떻게 표현하고 저장해야 하는지 △그 정보를 어떻게 쉽게 찾아낼 것인지 등 해결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

 앞서 설명한 가상 시나리오처럼 실제 설계단계에서 만든 구조해석 정보를 그대로 선박에 제공한들 선원이 구조해석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그 정보를 바로 사용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조선 전용 PLM시스템’ 개발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건조단계 정보를 운항단계에 유용한 정보 형태로 전환해 담을 틀을 만들어야 하는 등 선박 생애 단계별 정보 형태 및 표현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아직 국내 조선소 중에서 이런 단계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이런 기술적인 어려움은 우리에게 오히려 기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박을 효율적으로 건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고 또 성공했다. 이를 통해 최근까지 그 성과를 한껏 누리고 있다. 비록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조선산업의 성장세가 멈칫하고 있지만, 필자는 조선산업의 호황이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건조뿐 아니라 선박 수명주기 전반에 걸쳐 정보, 지식 및 서비스를 관장하는 조선 종합 콘텐츠 프로바이더(Contents Provider)로서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부터 준비하고 고민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shhan@DS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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