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과 함께 금융권 최대 컴플라이언스(규제준수) 이슈였던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구축 시장도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당초 시장규모가 1000억원 이상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절반 정도인 500억원 수준에 그치고 말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와 공급업체간의 저가 경쟁이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2007년 국내 금융권 중 가장 앞서 시스템 구축을 진행했던 외환은행을 비롯해 대부분 은행들은 시스템 구축을 모두 완료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지방은행들은 3분기 중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제2 금융권에서는 금융거래 특성에 맞게 AML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손해보험사나 카드사는 거래를 통한 자금세탁 가능성이 낮아,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이다.
◇은행·증권, AML 시스템 구축 활발=AML 도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은행권이다. 지난 2007년 외환은행이 국내 최초로 AML 시스템을 구축한데 이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기업은행 등이 지난해 초부터 AML 시스템 구축을 착수했다. 은행들은 작년 12월 22일 시행된 고객알기제도(KYC)에 맞춰 KYC시스템을 먼저 구축 완료하고 이후 혐의거래보고 시스템을 포함한 트랜젝션모니터링시스템(TMS)을 추가로 구축했다.
이 중 국민, 신한, 우리, 기업은행은 올해 초부터 추가로 AML 관련 워치리스트필터링 시스템을 구축했거나 구축하고 있다. 워치리스트필터링은 자금세탁상습범, 테러범, 제재조치가 가해진 사람, 위험 법인 등을 조사·가공·정제해 데이터베이스(DB)화 하는 것이다. 이 외에 대구, 부산, 전북, 한국씨티은행 등 지방은행과 외국계은행들도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하고 있다.
제2 금융권에서는 증권과 대형 생보사가 활발하게 AML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증권업계는 AML 도입 초기부터 비용 및 시간에 대한 부담을 우려, 공동 구축을 검토해왔다. 이를 위해 증권사들은 증권업협회를 통해 공동으로 컨설팅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구축 단계에서는 공동개발의 한계로 인해 많은 증권사들이 단독개발로 돌아섰다.
초기부터 단독개발을 추진한 삼성증권은 자체적으로 AML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공동개발을 검토했던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하나대투증권, 키움증권 등도 단독으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종합금융증권, 굿모닝신한증권, 한화증권, 유진증권, SK증권, 메리츠증권 등 7개사는 공동 개발을 위해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이달 말 컨설팅이 완료되면, 최종 의사결정을 통해 AML 시스템 공동개발을 결정하게 된다.
보험권에서는 생명보험 빅3인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정도가 AML 시스템 구축에 착수한 정도다. 그 외 생보사는 현재 검토 단계다. 저축은행업계도 중앙회 차원에서 67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공동 AML 시스템 구축을 지난 4월 착수, 현재 진행하고 있다.
◇손보·카드사, AML시스템 구축 소극적=당초 전 금융권이 활발하게 AML 시스템 구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경기침체로 인해 손해보험사, 신용카드사들은 아직 AML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손해보험사나 카드사가 AML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금융거래 특성상 손해보험 및 카드 거래를 통해 탈세나 자금세탁을 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즉, 손해보험사의 금융거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보험의 경우, 사고 발생시 견적이나 진단서 등을 통해 보험금이 정산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자금세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카드 금융거래도 신용카드 사용시 발생되는 거래 외에는 수신거래가 없기 때문에 자금세탁이나 탈세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적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회사의 매출이나 영업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규제준수를 위한 투자는 현 경기상황에서는 쉽지만은 않다”면서 “더욱이 자금세탁이나 탈세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낮아,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신용카드사도 마찬가지다.
이 외에 대형사를 제외한 생명보험업계에도 아직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지는 않다. 저축은행업계도 중앙회가 추진하는 것 외에는 개별적인 AML 시스템 구축 추진은 없다. 현재 자체 전산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솔로몬저축은행, 현대스위스저축은행, HK저축은행 등은 AML 시스템 구축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실제 수행에 옮겨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카지노 업계도 강원랜드가 AML 도입을 위한 프로세스를 정립한 후 소규모 솔루션을 도입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
◇예상보다 시장규모 작아 IT업체 경쟁 치열=당초 큰 규모로 기대됐던 금융권 AML 시장은 은행권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나마 2금융권에서 활발하게 추진된 증권사나 대형 생명보험사의 경우도 프로젝트 규모가 2∼3억원에 불과했다. 우선 은행권 시장에서는 국내 대형 IT서비스업체를 비롯해 LG히다치, 티맥스소프트, 한국HP 등이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패키지솔루션시장에서는 외환은행이 오라클의 맨타스 제품을 도입, 솔루션 시장의 포문을 연 이후 SAS, SAP, 코콤 등 다양한 외산제품이 국내 시장에 들어왔다. 이후 컨설팅 시장을 석권했던 국내 회계법인들과 국내 비즈니스룰엔진(BRE) 관련 업체들이 AML 솔루션을 출시하면서, AML 솔루션 시장에 공급과잉 현상도 발생했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그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보험사들이나 카드사, 저축은행 등이 시스템 구축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워낙 규모가 작아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해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에 가입했으며 올해 초에 1차로 대형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FATF 관계자로부터 실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실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고, 추후 2차 실사가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추후 실사가 나온다 하더라도 대형 금융기관 위주로 실사기 진행될 예정이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kr
◇자금세탁방지(AML)이란
우리나라가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에 가입함에 따라, 적용받게 되는 국제협약이다. 이 협약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자금세탁이나, 탈세 등이 의심되는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서는 혐의거래 보고를 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AML 도입을 의무화하는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이 국회 통과됨에 따라 금융거래를 주업무로 다루는 국내 기업들은 모두 AML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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