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비빔밥과 칼국수의 필요충분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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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국민은 비빔밥과 칼국수를 좋아한다.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입맛에 맞는 비빔밥을, 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취향에 따라 알맞은 칼국수를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숙련된 요리사는 요리사대로 각자의 솜씨에 따라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도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도 있어서 더 좋다. 비록 이름은 같은 비빔밥과 칼국수일지라도 집안의 전통이나 지방의 풍속 혹은 솜씨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즐길 수도 있다. 입맛이 조금 까탈스러운 사람도 색다른 고명이나 양념을 추가하면 만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서민의 전통 먹거리로 사랑받아 왔고 앞으로 조리법도 계속적으로 더 발전하리라 기대된다. 이러한 비빔밤과 칼국수를 보면 일견 밥과 국수에 양념과 고명을 얹는 메커니즘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나, 조리 방법과 재료의 종류 및 요리 순서에 따라 너무나 다른 맛을 낸다. 만드는 사람과 집안, 그리고 입맛에 따라 고명과 양념의 종류가 다르게 사용되면서 천차만별의 비빔밥이 되고 칼국수가 된다. 그러면 고명과 양념이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가. 아니다. 아무리 고명과 양념이 좋더라도 기본적으로 밥과 면의 품질과 조리방법이 부실하면 맛있는 음식이 되기 어렵다. 비빔밥과 칼국수에서 밥과 면은 가장 중요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미래 사회는 정보통신 기반의 사이버 패러다임이 보다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가치관과 관습이 시대의 조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사람과 사물과 동식물 그리고 생활기기까지도 상호 연결되고 교통하는 만물 소통시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기술, 조선기술, 화학 및 섬유기술 등의 전통기술과 바이오기술, 나노기술, 친환경기술, 신재생에너지기술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IT를 매개로 만나 서로 통합하거나 융합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융합 패러다임이 새로운 사회 변화의 조류를 관통하는 중심사상이 될 것이다. 여기에 IT가 사이버사회로의 전이에 가장 중요한 인프라와 매개체가 된다는 말이다. 그동안 사람 간의 통신과 정보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 IT의 대표적인 사회적 역할이었다면 지금부터는 IT가 인간 삶의 일부로서 생활 속에 포함돼 일체화된 형태로 변모돼야 한다. 사람에게 업무 및 오락을 제공하는 기기 역할에서 벗어나 인간 생활의 필수 인프라와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리라 예측된다. 우리나라가 영원히 선진국의 주변국가로 종종걸음을 할 것인지, 아니면 21세기 최초로 세계 중심권 국가로 진입하는지는 IT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융합 패러다임과 사이버사회에 맞는 창조적인 IT의 확보가 미래사회 건설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융합으로 표현되는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IT의 역할은 비빔밥과 칼국수에서 밥과 면의 역할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우리는 신문 지상이나 방송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융합 시나리오 및 계획을 들을 수 있다. 이것에는 IT와 BT, BT와 NT, NT와 IT 등 다양한 기술적 융합을 강조하는 얘기도 있다. 또 전통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IT의 복합화 얘기도 들린다. 사이버사회의 가장 중요한 서비스로 기대되는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통신, 방송, 생활 등을 서비스 차원에서 융합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제안되기도 하고 실제로 상용서비스로 구현되기도 한다. 최근 녹색성장을 위한 융합 계획이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비빔밥과 칼국수의 교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기본과 인프라가 간과되는 사회는 더 이상 안전하지도 않고 발전에도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녹색사회에서 세계의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IT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IT다. 미래 사회에서 비빔밥의 밥과 칼국수의 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IT다. 우리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비빔밥과 칼국수가 가장 선호하는 국민의 음식이 되듯이, 사이버사회가 계속되는 한 IT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이버사회에서 IT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음식에서도 본질이 중요하다. 맛을 잃어버린 밥과 찰기를 잃어버린 면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융합기술연구부문 소장 swsohn@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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