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 방산업체들이 국가 사이버 보안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전통적인 국방 예산을 줄이고, 사이버 보안 투자를 늘리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겨냥해서다.
이들은 기술력있는 소규모 보안 업체를 인수하고, 정보국 관료를 영입해 관련 조직을 확대하는 등 새 시장을 잡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무기 구입을 줄이는데 따른 매출 감소분을 이를 통해 보전하겠다는 전략이다.
◇보안 위협에 예산 배정도 급증=미 정보국은 매년 사이버 보안 위협으로 발생하는 손실이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 핵발전소 등 국가 기간망을 무력화하는 공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 최근 몇년 동안 사이버 스파이들은 펜타곤의 기밀 정보에까지 침투, 1500만달러(약2100억원)의 항공 기밀을 빼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부시 행정부는 처음으로 주요 사이버 안보 사업을 확정하고 예산 집행을 시작했다. 올해는 약 60억달러(약 8조5000억원)의 예산 지출이 예상된다. 세부 투자 항목은 기밀에 부쳐졌지만, 전문가들은 다음달에 끝나는 정책 평가에 따라 향후 5년간 예산이 150억(약 21조3000억원)∼300억달러(약 42조500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맹목적 투자는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보국 수석급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9·11테러 이후 무차별적으로 돈을 쏟아부었지만 얻은 것이 없어 투자를 꺼려하고 있다”며 “사이버 보안 전문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방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 보안 전문성 키워라=업계는 왕성한 투자를 자랑하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로날드 슈거 노쓰롭그루만 CEO는 최근 “미국의 방산업계는 이 문제를 위해 장비, 기술, 인력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냈다.
방위산업 통합솔루션 전문업체 레이시온의 CEO 빌 스완슨도 “군사 전문가가 아닌 IT 인력을 배치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자신했다. 레이시온은 지난해 정부 시스템통합업체 SI거버먼트솔루션을 인수하고, 2007년에는 오클리네트워크를 인수하며 전문성을 보완했다.
전문가 모시기에도 적극 나섰다. 지난 8월 거대 항공사 보잉은 전 국가안전보장국(NSA) 수석 사무관 바바라 패스트를 영입했다. 사이버 안보 분야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바바라 패스트는 보잉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네트워크 부문을 통합해 새 부문을 만드는데 투입됐다.
매출액 규모로 펜타곤에 가장 많은 무기를 공급해온 록히드마틴은 네트워크 허브가 있는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에 새로운 사이버 안보 시설을 짓고 있다.
◇외국 업체, 관련 산업에도 기회=외국 업체들도 새로 떠오른 시장에 군침을 흘리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유럽 최대 방산업체인 BAE시스템은 지난해 7월 11억달러(1조5000억원)를 들여 보안업체 데티카그룹을 인수했다. 최근에는 부시 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사이버 보안을 담당했던 핵심 관료 마리 오닐 시아론을 영입하며 조직 강화에 고삐를 쥐고 있다.
방산업체들의 정책 자문이 늘 것으로 기대되면서 컨설팅업체도 바빠졌다. 부즈알렌해밀턴(BAH)은 10년 이상 사이버 안보 분야에 집중하면서 NSA·부시 행정부의 국가정보국 이사로 활동한 마이크 맥코넬을 수석 임원으로 뒀다. 그는 현재도 대통령 자문 기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딜로이트컨설팅도 최근 부시 행정부의 사이버 정책 밑그림을 그린 빌리 오브라이언을 고용했다.
차윤주기자 chay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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