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녹색성장의 질서, 그 뒤엔 IT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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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矛盾)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 무엇이든 뚫은 수 있는 창, 그 어떤 것도 막아내는 방패. 이 둘이 동시에 맞부딪힌다면? 전멸 아니면 허탈일 게다. 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둘 다 쓸모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창은 무뎌져 아무것도 뚫을 수 없게 되고 방패에는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다. 정면 승부를 피한다면 볼거리 하나 없는 싱거운 졸전이 될 게다.

 40대 이상이면 그 유명했던 세계적인 빅 매치, 무하마드 알리와 이노키의 경기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젊은이들에게 인기 절정인 이종격투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제격이었다. 이노키는 알리의 핵주먹을 피해 뒤로 벌렁 누워 빙빙 돌 뿐이었고, 알리는 이노키의 잡아채기를 피해 주변만 빙빙 돌 뿐이었고. 가끔 프라이드나 UFC 경기를 보지만 싱겁기는 매한가지다. 거의 절반 이상을 누워서 뒹굴 뿐이다.

 친환경과 성장은 지금까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었다. 개발과 성장은 환경파괴와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자고 나면 무성한 숲이 없어지거나, 하천이 말라붙거나, 개울물이 시커먼 시궁창으로 변하곤 했다. 세계의 룰 메이커 미국마저 그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자는 각국의 노력을 무시해 왔다. 미국은 지구촌에서 가장 부강한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당연히 가장 많다. 배출 규제 협약을 지켜려면 지금껏 누려온 부유함도, 성장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파괴와 성장이야말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환경파괴는 곧 파멸을 초래한다. 친환경 없이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 진원지는 지금껏 이산화탄소 규제를 무시해온 미국이다. 미국의 태도가 갑자기 달리진 이유는 무엇일까. 불현듯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중차대한 사명감을 깨우친 때문일까. 속내는 지금까지의 한계를 정보기술(IT)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린IT라는 신시장 창출에 있을 것이다.

 부통령에서 세계적인 친환경 메신저가 된 앨 고어. 그는 과거 정보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이었다. 앨 고어가 지구를 지키자고 외치던 그 시간, IBM은 그린IT를 조용히 들고 나왔다. IBM은 앨 고어의 정보고속도로 건설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IT업계 대부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절묘하다. 무어의 법칙이 지속되고 있는 IT는 이제 모순이라는 현실의 한계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 통신기술을 접목해 통신혁명을, 바이오기술과 손을 잡더니 바이오 혁명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친환경과 성장을 융합시켜 녹색성장 혁명을 불러오고 있다.

 녹색성장은 이제 ‘아름다운 환경을 자손에게 물려주자’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다. 친환경과 성장을 동시에 거머쥐자는 기술 경쟁이자 경제전쟁다. 세계 질서를 거머쥐고 있는 미국과 미국의 IT가 뒤에 버티고 있다. 그러기에 결코 전멸하거나 싱겁게 끝날 게임이 아니다. 벌써 잽싼 일본은 녹색성장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일본은 그린IT와 접목할 수 있는 친환경 생산기술에서 최강자다. 미국과 일본은 녹색성장 동맹으로 다시 한번 세계 경제질서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녹색성장 세계 질서 속에서 국내 업계는 속이 탄다. 값비싼 미일의 수입 기술로 친환경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판이다. 거대해질 친환경 신시장에 내다 팔 기술도, 제품도 부족하다. 자칫 수출 대국에서 녹색기술 수요처로 전락할 위기다. 이 모든 고민의 해결점은 속도가 무기인 IT 육성에 있다. 미국과 일본에 각각 미치지는 못하지만 한국은 세계 수준의 IT와 생산기술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IT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기술을 적극 육성한다면 지금까지처럼 머지않아 미·일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유성호 논설위원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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