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U 외국인 교수 `귀하신 몸`

무리한 요구 다반사... 사업 시행 첫해부터 `삐걱`

 정부 대학재정지원사업인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World Class University)’이 사업 시행 첫해부터 외국인과학자의 지나친 요구와 문화 차이 등으로 삐걱대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총 825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22일 대학가에 따르면 WCU 사업에 참여하는 130여개 사업단 가운데 20∼30개 사업단이 대학 개강을 열흘 앞둔 현재, 고용계약서조차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WCU 초청 외국인 과학자들이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는데다 대학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내세워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1월 말에 외국인 교수와 계약을 완료하고 3월부터 강의에 들어가야 하지만, 초빙 학자의 무리한 요구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대학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20∼30개 사업단이 아직 킥오프 미팅도 갖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WCU 사업 가운데 전공·학과 개설지원 과제(유형1)를 따낸 모 대학은 초빙 외국인 교수 중 핵심인 A교수가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환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환차손을 보전해달라는 것은 물론이고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원화로 임금을 달라고 요구’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학교 측은 그가 ‘핵심 과학자 한 명이 계약을 하지 않으면 과제 수행이 불가능해 사업 전체가 없어진다’는 허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또 다른 대학은 최근 WCU 관련 파트타임 강의를 하기로 계약한 B교수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연구를 진행하겠지만, 미국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벤처기업 과제를 계속할 것이며 이를 허가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유명 대학 학장인 C씨는 대학 측에 ‘한 달은 한국에서, 한 달은 미국에서 생활하겠다’는 규정에 어긋난 요구를 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해외에서 수행 중인 연구를 마칠 수 있도록 연구 기간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우리나라와 초청국 대상국가와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빚어졌다. WCU에 초빙을 받은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연구원은 겸직 동의서를 받아오라는 대학 측 요구에 난색을 표명했다. 겸직 동의서에 NASA 책임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에는 이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 사인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한국과학재단은 이런 상황이 연출되자 지난해 12월 26일이었던 제출서류 마감일을 지난달 31일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사업단이 많아 독촉 중이다. 한 연구중심 대학의 교수는 “준비기간이 불과 3개월 남짓해 사업을 따기 위해 제대로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외국 교수 이름을 빌려 서류를 제출했다”며 “졸속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곽민해 한국과학재단 팀장은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의외로 많아 관련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며 “사업 기본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World Class University) 육성사업

교과부가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 분야에 잠재력이 있는 해외 유수 학자를 유치해 국내 학자와 공동 연구를 유도하고, 이로써 세계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새 전공 및 학과 개설 △잠재력이 큰 해외학자 전일제 교수로 채용 △세계적인 석학을 비전일제 교수로 초빙 세 유형에 걸쳐 5년간 매년 1650억원을 지원한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