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세탁기 시장은 몇 개의 주도적 사업자가 지배하는 성숙 시장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평균 판매가가 500달러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품 간 독특한 차이점이 거의 부각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정체기에 놓여 있었다. 또 모든 미국 소비자에게는 세탁기가 저가 제품이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자국 브랜드인 월풀과 메이태그가 시장을 독점하는 수준이었다.
보수적이면서도 원가 경쟁력이 요구되는 북미 세탁기 시장에 외국 브랜드인 LG가 성공적인 론칭을 하고 또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LG만의 기술력을 이용해 시장 자체를 재구성하고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자인팀의 고민은 어떻게 LG 세탁기를 북미 소비자에게 프리미엄 제품으로 소개하면서 거부감 없이 시장에 진입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팀에서는 기존 북미 소비자가 지니고 있는 세탁기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형상과 기능의 업그레이드를 거친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이라는 방향을 세웠다. 향후 어떻게 LG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나갈 것인지를 놓고 포괄적인 디자인 개발이 진행됐다.
특히 북미 시장 진입 초기 메이플라워의 성공 이후 세탁기 분야에서 LG의 브랜드 파워가 생기고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차기 모델에 대한 기대치 또한 비례해서 증대했다. 또 북미 시장에서 확고한 제품 리더십을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LG 프리미엄 세탁기의 디자인이 시장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카피되기 시작할 때쯤 자연스럽게 시장도 가격·성능·디자인 모두 다시 한번 리더십을 확인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 구도로 접어들게 됐다.
디자인팀에서는 이 모든 시장의 요구를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강하게 이끌어줘야 하는 책임을 지고 1년 이상의 연구개발을 거쳐 기존 LG가 수립했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뛰어넘는 새로운 폼팩터 개발을 목표로 다양한 방법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전 시장에는 없었던 사각(스퀘어) 도어를 과감히 제시함으로써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폼팩터 ‘유니버스’가 탄생했다. 이 제품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09에서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북미 시장에서 단기간에 자사 브랜드로 성공적인 론칭과 포지셔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디자인 부문에서도 철저히 현지화된 마인드, 지속적인 현지 소비자 반응조사, 라이프 스타일 연구 및 적극적인 디자인 발굴 등 차별화된 디자인 프로세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향후 디자인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객 통찰(인사이트)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프로세스 강화와 매너리즘을 능동적으로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 긍정적이고 창의적 사고가 가장 중요한 팩터가 될 것이다.
성재석 LG전자 슈퍼 디자이너 jsseong@l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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