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base by true story)으로 한 영화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실제 일어난 사건인만큼 생생한 인물 묘사와 그로 인한 이야기 전개는 관객을 흡입하기 충분하다. 하지만 결과가 공개된 이야기는 맥이 빠진다. 이것은 분명 단점이다. 영화 말미에는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몇 년형을 받았다’는 자막이 꼭 나온다. 특히, 희대의 범죄자를 그린 액션 영화는 더욱 그렇다.
400만파운드를 훔친 영국 최고의 은행털이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미가 당겼으나 비디오 테이프를 맨 뒤로 돌려 결과를 본 것처럼 뻔했다. 경찰과의 두뇌싸움, 절도 시 벌어지는 구성원 간 갈등, 남녀의 사랑. 이것 이상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8일 국내 언론에 공개된 ‘뱅크잡(로저 도날드슨 감독, 제이슨 스태덤, 새프론 버로즈 주연)’은 그렇게 만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110분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속사포 편집과 영국 신사숙녀들의 빼어난 연기에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말해 뱅크 잡은 아주 잘 만든 액션 영화다. 그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말이다.
뱅크잡의 매력 요소는 여러가지다. 소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은행 강도 이야기다. 영화에는 카 딜러, 모델, 사진 작가 등 흥미를 당길 만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범인이 등장한다. 런던에서 중고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테리(제임스 스태덤)는 어느 날 옛 애인 마틴(새프론 버로즈)으로부터 로이드 은행의 경보 장치가 24시간 해제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침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던 그가 선택한 길은 뻔하다.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 ‘쌈마이’ 시절, 옛 동료를 소집한다. 포르노 배우 데이브, 사진작가 케빈, 콘크리트 전문가 밤바스, 양복 전단사 가이, 새 신랑 메디다. 그들은 각자 임무를 맡고 주말 저녁 은행털이에 나선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은행털이 영화와 같은 모양새다. 그러나 웰 메이드 액션 영화 뱅크잡은 이런 전형적인 곳에서 한발 더 나간다. 13m 지하 터널을 뚫고 마침내 은행 금고에 도착한 7인의 일당. 평소에는 ‘찐따’로 불렸지만 수백개의 금고에 보관 중이던 돈과 보석 앞에서 그들은 7인의 사무라이로 거듭난다. 그들이 챙긴 돈은 무려 400억원이 넘었다. 경찰의 추격은 예상했다. 그러나 일행 뒤를 쫓는 것은 경찰만이 아니었다. 007로 유명한 영국 정보부 MI5과 영국판 말콤 X라고 자칭하는 흑인 갱단까지 이들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7인의 찐따를 찾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이 시점 테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여기서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된다. 아마추어 강도와 이들을 쫓는 무리들의 한판 두뇌 게임은 개인금고 안에 있는 추악한 비밀을 둘러싸고 날줄과 씨줄처럼 엮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추격자 중 돈을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흑인 갱단은 금고 안에 있던 영국 왕실의 비밀 사진 회수가 목적이며 경찰은 비밀 장부에 혈안이다. MI5이 노리는 것은 바로 흑인 갱단이다. 7인 중 한 명은 추격자들과 연관돼 있다. 자고로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올라가게 마련. 그러나 8090 세대들에게 유명한 ‘노웨이 아웃’ ‘겟 어웨이’ ‘스피시즈’를 만든 로저 도날드슨 감독은 망망대해에서 폭풍우를 맞은 배(소재)들을 가지런히 불러들여 일렬로 정박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영화 엔딩 곡인 비틀스의 ‘Money(That’s What I, want)’는 ‘이탈리안잡’ ‘오션스 일레븐’ 등 수준 높은 범죄 스릴러를 재현하려는 감독의 외침으로 들린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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