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홍콩 영화에는 국내 관객의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열광하거나 혹은 저주하거나.
열광하는 관객은 주로 기분파다. 소싯적 청룽(成龍), 리샤오룽(李小龍)의 쿵푸 영화에 심취해 취권을 배우기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이들이다.
혐오하는 쪽은 주로 순정파가 많다. 영화는 무릇 이래야 한다는 자기 주장이 뚜렷한 이들이 주로 포진해 있다. 순정파는 주연 배우만 다르고 복수라는 주제는 똑같은 홍콩 영화의 클리셰(관습)를 기준 이하로 취급한다.
이런 양당(兩黨) 체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과거 홍콩 영화의 정체성 때문이다. ‘홍콩 익스프레스’라고 불리는 전성기인 70∼90년대 홍콩산 영화의 주제는 ‘복수’로 요약할 수 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가족(주로 아버지나 부인)이 죽고 살아남은 아들은 복수에 나선다는 주제는 단순히 영화의 소재를 넘어 홍콩 영화의 존재 이유를 정의하는 수준까지 올라서 있었다. 이 경향은 누아르 경찰물, 혹은 저우싱츠로 대변되는 코믹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복수극은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줬지만 처절한 실패를 예견하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이후 찾아온 10년의 슬럼프. 1990∼2000년 10년간 홍콩 영화계는 암흑기였다. 무차별적 자기 복제를 일삼은 홍콩 영화계에 대한 관객들의 경고인 셈이다. 실제로 바닥까지 떨어진 홍콩 영화 지지도는 쉽게 오르지 않았다. 우위썬, 왕자웨이, 왕징 등 유명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자웨이 영화에 애정은 막판까지 갔지만 관객 점유율은 매년 10%가량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홍콩 영화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2000년 이후 홍콩 영화는 다시 부상했다. 자기 정체성인 복수를 ‘트라우마’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매드 디텍티브(더우치펑·웨이자후이 감독, 류칭윈·안즈제 주연)’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대 홍콩 영화의 향후 행보를 예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980년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뒤 1990년대 제작사 ‘밀키웨이’ 이미지를 설립한 더우치펑 감독. 그는 이 영화에서 단선적인 복수극에서 벗어난 홍콩 영화가 머금은 새로운 스타일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매드 디텍티브의 매력은 그동안 홍콩 영화가 가지지 못했던 다중 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친 형사(매드 디텍티브)라는 제목의 이 영화에는 다중인격장애(혹은 해리성 정체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다시 말하겠지만 다중인격장애는 단순함을 거부한 새로운 홍콩 영화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숲에서 절도 용의자를 쫓던 왕 형사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의 동료 치와이(린자둥)만이 무사히 돌아온다. 왕 형사가 실종된 지 18개월. 도심에서는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맡게 된 호 형사(안즈제)는 신참 시절 자신의 상사였던 번(류칭윈)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형사 번은 몇 년 전 미친 형사라는 오명을 안고 경찰직을 떠난 인물. 호는 번과 짝을 이뤄 수사하면서 번에게 사람 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인격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번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치와이가 7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호는 오히려 번을 의심한다.
더우치펑 감독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표정을 통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설명한다. 차가운 지성이 아닌 뜨거운 본능을 가진 번을 통해서 보여지는 주제는 매우 새롭다. 번은 행동으로 기존 홍콩 영화가 가진 단순함, 가벼움과는 다른 차원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에 보이는 그의 신체 훼손 이미지는 홍콩 영화가 앞으로 단선적 이미지가 아닌 디스토피아를 담은 하이퍼 텍스트를 선보이리라는 것을 예견케 한다. 한정훈기자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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