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virtualization)는 ‘오랜 역사를 지닌 신기술’이다. 가상화의 기원은 1960년대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의 파티셔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성능과 용량을 가진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가상화는 2000년대 들어 일반 x86서버와 스토리지 분야로 확장·적용되면서 매년 ‘주목할 만한 기술’ 리스트의 단골 손님으로 초대받을 정도로 IT업계의 주요 아이템으로 성장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세계 가상화 소프트웨어(SW) 시장은 지난해 17억7900만달러에서 올해 27억1500만달러로 늘어나고 오는 2010년에는 42억77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화 SW가 확산되고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상화는 하나의 물리적인 하드웨어를 여러 개의 가상 하드웨어로 나눠쓸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클라이언트단말기 등을 여러 대처럼 사용할 수 있다.
최근 가장 관심이 높은 서버 가상화는 ‘1서버, 1운용체계(OS)’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한 대의 서버로 복수의 OS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서버 대수를 줄여 IT비용을 절감하고, 더불어 그린IT 구현에도 일조할 수 있다. 또 하나 이점은 관리의 효율성이다. IT인프라를 관리하는 방법론에서 전혀 새로운 방법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IT 관리를 담당하는 인력이 프로비저닝이나 설치에 따른 구성, 모니터링 및 유지 보수와 같은 반복적인 작업에 빼앗기는 시간을 줄여준다.
과거 한때 하드웨어 판매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부 하드웨어 판매사가 가상화 솔루션 비즈니스에 소극적이기도 했지만 가상화를 통해 자원 활용률을 높여나가려는 IT시장의 요구가 확산되면서 이제 가상화는 IT 전 영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에는 서버 가상화를 넘어 스토리지, 데스크톱PC 등으로 확대되고 있고, 이들 요소별 가상화는 서비스수준협약(SLA),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차세대 데이터센터 등으로도 적용되고 더 나아가 유틸리티 컴퓨팅을 위한 실시간 IT서비스 제공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가상화 SW 시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x86서버 가상화 시장에서 한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VM웨어가 초반 시장을 주도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씨트릭스 등의 반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들은 이미 단순히 가상화 환경을 구현하는 SW를 공급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가상화 SW를 발판삼아 가상화 환경을 관리·운영하는 IT인프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SW업체도 이들 글로벌 SW업체에 선수를 빼앗기긴 했지만 아직 가상화 SW 시장이 초기 단계인만큼 새로운 기능을 더해 승부한다면 해당 시장에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국은 x86 서버 시장의 가상화 도입 비율이 0.4%로 미국(6%)이나 호주(8%) 등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다.
곧바로 서버 가상화 SW 시장에 진출하긴 힘들어도 이와 연계되는 다양한 부가가치 SW 시장은 노려볼 만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버기반컴퓨팅(SBC)업체 틸론은 SBC 환경 구축 과정에서 단말기에 화면 값만 보내줄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가상화 SW를 개발, 상용화한 데 이어 최근에는 애플리케이션 및 데스크톱 가상화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최백준 틸론 사장은 “보안 부문에 적용할 수 있는 인증서 가상화 등 다양한 응용 시장이 존재한다”며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대응한다면 가상화 SW 시장에서도 우리나라 업체가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태호 VM웨어코리아 사장 인터뷰
지난 2003년 말 미국 스토리지업체 EMC는 가상화 SW업체 VM웨어를 6억3500만달러에 인수한다고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스토리지시스템 위주의 하드웨어 업체로 인식되던 EMC가 그것도 서버 가상화에 강점이 있던 VM웨어를 인수한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하지만 EMC의 선택은 정확했다.
지난 1998년 대학 연구실 동료이자 부부인 다이앤 그린, 멘델 로즈프럼이 공동 창업한 작은 회사 VM웨어는 지난해 직원 3000명, 매출 13억3000만달러를 올리는 성공한 SW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8월에는 뉴욕증시에도 상장하며 또 하나의 SW벤처 성공신화를 썼다.
VM웨어의 한국 지사장을 맡고 있는 현태호 사장은 VM웨어의 성공 스토리는 미래 IT환경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이에 따라 한발 앞서 움직인 것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SW업체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현 사장은 “VM웨어 창업자는 범용 프로세서와 운용체계(OS)로 구성되는 x86서버가 IT인프라의 핵심 시스템으로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 예측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가상화 SW의 필요성을 다른 경쟁업체 비해 빨리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VM웨어가 서버 가상화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응용 시장을 창출해 나가는 것처럼 한국의 SW업체들도 확산되고 있는 가상화 SW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VM웨어는 재해복구(DR), 백업, 보안, 고가용성(HA), 운용자동화, 데스크톱PC 등으로 가상화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 사장은 “가상화 시장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는 솔루션은 무궁무진하다”며 “한국 업체들이 백업, 보안처럼 가상화와 관련해 처음엔 생각하지 못한 분야였지만 새로운 매출 기회로 떠오르고 있는 시장에 주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VM웨어가 달라진 IT환경에 맞춰 발빠르게 또 한번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현 사장은 전했다. 그는 “개별 서버 하드웨어 관점에서의 초기적인 가상화에서 탈피해 전체 인프라를 전환할 수 있는 신기술을 연이어 발표할 계획”이라며 ”가상화 인프라 구축·관리업체로 거듭난다는 것이 본사의 구상”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new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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