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운송정보가 인터넷에 `버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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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 왔습니다.’

 벨이 울리고 현관문을 열자, 모 택배사 직원이 상자를 건네며 수취인 본인인지 물어보고 서명을 요구했다. 서명을 하자 인사와 함께 문을 닫고 바삐 걸어나갔다. ‘택배 운송장에 있는 정보가 범죄에 활용될 수 있으니 유의하라’라는 조언은 없었다. 운송장 용지 어디에도 박스 또는 운송장 처리 시 개인 정보 부분을 파기하라는 주의 문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취하는 사람이 상자의 내용물만 확인하고 운송장이 붙어 있는 상자를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린다면 개인의 신상 정보가 범죄자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될 우려가 있다.

 ◇부재 시 옆집이나 경비실에=이는 전자신문이 취재 대상으로 삼은 12개 주요 택배업체 모두 같았다. 각 택배사 용지 모두에 주의 문구가 없었고 택배원들 역시 안내를 하지 않았다. 택배사는 수취인 부재 시에는 보통 옆집이나 경비실에 맡겼다. 택배 운송장을 통해 물품을 대신 받은 이웃이 나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아파트 뒤편 쓰레기장에서는 휴대폰 전화번호와 개인주소, 운송장번호가 그대로 부착된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택배박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경찰청 강력계 박태훈 경장은 “택배 관련 범죄를 따로 집계하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택배 배달원을 가장한 강도사고가 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운송정보 인터넷에 버젓이=운송장이 붙은 채 버려진 택배 상자는 인터넷에서 더욱 정교한 정보로 둔갑될 수 있다.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에서 ‘운송장 조회’ 등을 검색하면 주요 택배사와 연결돼, 배송 상황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로그인’ 등 개인확인 절차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운송장 번호만 있으면, 어느 시간에 어떤 종류의 물품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범죄자가 수취인의 취향을 파악하고, 운송장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해 택배원으로 가장한다면 사실상 범죄에 속수 무책인 셈이다.

 이동수 CJ GLS 과장은 “인터넷 배송 조회정보를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로 변환해 저장할 수 없게 하고 주소나 전화번호 끝자리를 지우는 형태로 개인정보 보안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택배 박스에 붙어 있는 운송장을 입수하게 되면 사실상 모든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으므로 포털사이트에서 조회기능을 없애고 로그인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직영체제로 전환 시급=택배 업계가 직원뿐만 아니라 고객들도 교육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담뱃갑에 폐암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듯 운송장에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운송장을 파기하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삽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는 택배업을 지금과 같은 가맹점 방식이 아닌 직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상원 택배산업연구원장은 “택배 업계는 본사가 가맹점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라며 “고객 개인정보 보호와 같은 전사적 캠페인을 실시해도 각 대리점에서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 사고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대리점주들을 불러 놓고 개인정보 교육을 했다”며 “그러나 참여도가 지극히 낮은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김규태·정진욱기자 star@

 

<표> 택배관련 올해 주요 범죄 사례

사건 일자 관할경찰서 범죄내용

5월 5일 서울 마포경찰서 택배배달원으로 가장해 대학가 주변을 돌며 여대생·여성 직장인 강도강간

4월 8일 대구 수성경찰서 택배배달원으로 가장해 여성 혼자 거주하고 있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 시도

4월 4일 제주 경찰서 택배배달원으로 가장해 침입 후 흉기로 위협하고 금품탈취

2월 13일 부산 서부경찰서 택배 상자에 적힌 주소 악용해 빌라에 침입 금품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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