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이야기를 해보자. 어린 시절, 어떤 만화를 좋아하셨는지? 각자 식성이 다르겠지만 베르세르크, 태권브이, 슬램덩크 등 몇몇 만화는 성별과 연령을 뛰어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킹왕짱’이 있었으니…, 바로 마블 코믹스가 만들어낸 ‘맨’ 시리즈다.
마블 가의 남자(맨)들은 매번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마블은 낙관적인 미국의 영웅을 바라는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DC코믹스와는 달리 젊은 세대의 문화적 진화를 감지, 스스로의 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신경질적인 히어로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인류 구원과 사랑 사이에 고민하던 스파이더맨이 그랬고 정체성을 고민하던 엑스맨도 마찬가지였다.
마블이 만들어낸 영웅 중 독특한 놈이 하나 있다. 스파이더맨의 아버지 스탠리가 만들어낸 영웅 대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비범한 능력을 할애받은 이른바 ‘난 놈’이라면 아이언맨은 오직 자신의 머리로 스스로 영웅이 된 조물주에 비견된다. 이런 차별성으로 아이언맨은 북미 대륙에서 유독 사랑받았다. 스파이더맨에 비견될 수 없지만 아이언맨은 적어도 준치 정도는 되는 거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이런 사랑과는 달리 영화와는 인연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아이언맨의 스크린 데뷔를 간절히 바랐지만 마블 코믹스는 ‘철갑 사내를 제대로 그릴 감독을 못 만났다’는 이유로 매번 영화화를 거절했다. 심지어 톰 크루즈가 철갑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직접 사비를 들여서라도 제작에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마블의 답은 ‘노’였다.
마블은 탄생 40주년이 흐른 지난 2005년에야 영화화를 결정했다. 그것도 판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마블 엔터테인먼트)이 최초로 직접 제작, 투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영화 제작 경험이 전혀 없었던 마블이 제작에 뛰어들다니!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것이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이언맨(존 파브로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기네스 펠트로, 테렌스 하워드 주연)’다.
영화는 만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른다. 열 다섯 살 MIT에 입학한 영재 토니 스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는 부모님의 자동차 사고로 젊은 나이에 군수 업체 ‘스타크인터스트리’의 CEO에 오른다. 그의 별명은 ‘다빈치’이자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내는 ‘죽음의 상인’. 아프가니스탄에 무기를 팔러 간 토니는 시연 중 치명상을 입고 테러집단에 생포된다. 탈출을 위해 그는 구상 단계에 불과하던 철갑 옷(아이언맨)을 만들어내고 옷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사건 후 개과천선한 그는 업그레이드된 아이언맨을 만들고 이를 앞세워 악을 응징한다.
영화 아이언맨은 미안하지만 그리 좋은 작품은 아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겠지만 영화 아이언맨의 설정은 ‘로보캅’과 아주 유사하다. 사고 이후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는 것도 그렇고 외상 후 얻은 트라우마가 인류 구원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내용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고는 로보캅과는 달리 아이언맨은 주인공의 의지에 따라 입고 벗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극적 전개는 더하다. 특히, 스토리는 ‘12세 이상 관람가’가 아닌 ‘12세 이상 관람 불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치하다. ‘미국=선, 아시아=악’이라는 이분법도 걸리지만 내조에만 힘쓰는 평면적인 여성 캐릭터(기네스 펠트로)는 너무했다. 굳이 장점을 뽑자면 1억8000만달러가 투입된 대량 전투 신으로 머리를 비우고 싶은 관객에게 유효할지 모른다. 한정훈기자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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