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둘러싼 국가별·지역별 블록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일본 반도체 업체 간의 사업부 통합 및 합자회사 설립, 대만 파워칩·TSMC·뱅가드 반도체 3사 간 공동 팹 신설 등 합종연횡 소식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급기야 ST마이크로출신 한 임원이 프랑스 정부에 NXP·ST마이크로·인피니언의 유럽 빅3 반도체 업체 간 대연합을 제안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게다가 세계적인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가 R&D기능을 강화하기로 해 국내 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반도체 업체 간 합종연횡은 불황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업체는 심해지고 있는 국가별·지역별 블록화 현상이 국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그간 해외 업체들과 활발한 기술제휴 등을 추진해왔다.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대표주자는 해외 업체와 상호 라이선스, 기술이전 등으로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가별·지역별로 반도체 업체 간 블록화 현상이 큰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범상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블록화 현상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형을 바꿔놓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국내외 업체들과 폭넓은 협력을 타진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해외 업체와 협력을 놓고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낸 바 있다. 해외 업체와의 제휴가 단순한 기술이전이 아니라 기술유출이라는 시각과 기술보안을 전제로 이뤄지는 기술 이전인만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충돌하면서 논란이 됐다. 외부인 위치에선 어느 쪽이 옳은지 판별하는 게 쉽지 않다. 다만,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미래 반도체 기술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자된다. 특정 업체가 독자적으로 투자하기는 힘에 부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반도체 업체 간 블록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 역시 기술개발과 생산, 시장개척 등 노력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해외 업체와의 기술 제휴는 물론이고 국내 반도체 업체 간 협력도 지금보다 훨씬 공고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메모리 중심에서 탈피해 비메모리 분야의 투자를 확대하고 팹리스 업체들의 대형화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팹리스업계와 메모리업계 간 연계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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