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시네마, 사적(私的) 이미지를 차용하다.’
영화는 1895년 12월 프랑스 그랑카페에서 시작됐지만 이를 완벽한 오락거리로 재창조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할리우드가 현재 위용을 갖추기 시작한 1940년대부터 세계 영화계를 주도해왔다. 스튜디오 시스템 등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제작 환경은 모두 미국에서 태동했다. 이 영향력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이 점에서 미국 영화에 대한 이해는 세계 영화 조류 파악에 큰 도움이 된다. 9·11 사태 이후 미국 영화에서 나타난 하나의 특징은 ‘사유화된 이미지의 차용’이다. 여기엔 유튜브 등 최신 테크놀로지가 깊숙이 관여됐다.
◇이미지를 사유화하는 테크놀로지=정보의 통제는 영화에선 고전적 기술이다. 카메라를 가진 감독은 시간 순으로 배열된 내러티브를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가장 효율적인 통제 방법은 ‘이미지에 의한 지배’. 영화에서 감독은 모든 내러티브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이 보는 이미지는 감독의 시선에 의해 한 번 걸러진 것들이다.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최근 미국 영화엔 새로운 시도가 한창이다. 감독이 아닌 배우(관객)가 만든 ‘사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이런 사적 이미지는 개인용 IT기기에 크게 기댄다. 캠코더·휴대폰 등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은 아메리칸 시네마에 이미 침투했다.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보기 습관을 어떻게 영화에 반영했는지 요즘 미국 영화에서 살펴볼 만하다.
영화에 쓰인 사적 이미지가 주는 매력은 충분하다. 감독이 아닌 배우가 생산하는 화면은 현실감이 넘친다. 영상은 조악하지만 일상적 존재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관객에게 주는 이미지가 더욱 강력하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찍어 새로운 충격을 안겼던 ‘블레어위치’부터 시작된 사적 이미지의 차용은 지난해 개봉한 관음증에 대한 보고서 ‘디스터비아’에서 방점을 찍었고 오는 24일 한국을 찾아오는 ‘클로버필드(맷 리브스 감독)’에서 극대화된다.
◇CNN의 영화화=클로버필드는 ‘캠코더 블록버스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뉴욕을 초토화시킨다는 스토리의 이 영화는 재난이 끝난 뒤 센트럴파크에서 발견된 캠코더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상영된다. 현장을 기록한 이는 감독이 아닌 주인공 허드(T J 밀러). 그가 만든 화면은 유튜브에서 보는 동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홈무비로 찍은 이 영화의 비주얼은 감독의 통제가 아닌 배우의 동선을 따르면서 현실감이 넘친다. ‘트랜스포머’ ‘나는 전설이다’ 등 수천억원의 돈을 투입한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앞의 작품들이 스케일로 우리를 옥죈다면 ‘클로버필드’는 마치 내가 당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괴수에게 쫓기는 인간의 모습은 이전 괴수 영화에서 자주 봐온 것이지만 ‘홈무비 비주얼’을 채용한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은 남다르다. 눈이 아플 정도의 ‘극한적 핸드 헬드(EXTreme Handheld) 기법’으로 촬영된 화면은 촬영자의 숨소리마저 그대로 담은 채 흔들린다. 현실적인 배경과 비현실적인 소재가 아무런 경계 없이 뒤섞인 화면은 캠코더라는 ‘테크놀로지에 의해 사유화된 이미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국 CNN에 방영되는 9·11 뉴스 장면들처럼 극도로 현실적이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한정훈기자@전자신문, ex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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