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원산지 기준을 웨이퍼가 생산되는 팹 소재지로 하자는 세계반도체협회(WSC)의 표준안이 미국 측의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이에따라 세계반도체업계는 원산지의 기준을 목적에 따라 이원화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15일 해외 반도체업계 한 소식통은 “최근 개최된 세계 반도체 생산국관민합동회의(GAMS)에서 미국 측이 보편적 반도체 원산지는 ‘웨이퍼’ 기준으로 하되, 예외를 인정하는 디커플링 도입을 제안했다”며 “현재 각국 정부가 이에 대한 입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미국측 제안에 대해 일본 측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한국·대만·EU 등은 아직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반도체 원산지에 디커플링이 도입되면 안티덤핑·상계관세 등 민감한 무역구제용으로는 ‘웨이퍼’가 원산지 기준이 되지만, 칩 마킹·생산 통계 등은 국가별로 기준이 달라지는 기형적인 운영이 불가피하다. 사실상 지난 1년간 추진된 반도체 원산지 통일 논의는 무산되는 셈이다.
미국이 디커플링 도입을 요구하는 이유는 현재 자국은 패키지(후공정) 공장 소재지를 원산지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어, 만약 웨이퍼를 기준으로 하게 될 경우 칩마킹·원산지 분류 등에서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무역상의 원산지는 ‘웨이퍼 기준’으로 하더라도, 통계와 칩 마킹은 기존대로 유지함으로써 업무 및 비용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세계반도체협회(WSC) 회원국들은 지난 5월 총회에서 다수결(일본·대만·중국·EU·한국 찬성, 미국 반대) 절차를 거쳐 반도체 원산지 기준을 웨이퍼가 생산되는 팹 소재지로 잠정 결정했으나, 미국측이 패키징(후공정) 공장의 소재지가 원산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최종 부결돼 재검토에 들어간 바 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용어설명>반도체원산지 디커플링=디커플링은 한 국가의 경제가 보편적인 세계 경제의 흐름과는 달리 독자적인 경제 흐름을 보이는 현상으로 동조화(coupling)의 반대 개념이다. 반도체 원산지 규정에서의 디커플링이란 안티덤핑·상계관세 등 무역의 기준이 되는 보편적 원산지 기준은 ‘웨이퍼 생산지’로 하되, 통계와 칩 마킹 등의 기준은 국가별로 상황에 따라 ‘패키지 생산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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