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IT산업은 30여년 이상 축적된 대덕연구단지에서 파생된 기초기술을 토대로 성장해왔다. 이 지역 IT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 특정 산업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 출연연구원에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각 연구소에서 뛰쳐나온 우수한 R&D 연구인력이 창업 대열에 합류, 현재와 같은 대덕특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연구인력이 다양한만큼 창업 업종도 각양각색이다. 다른 지역이 특정 산업 분야를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대전시가 IT·바이오·메카트로닉스·첨단 부품소재를 4대 전략산업으로 선정했지만 바이오를 제외한 나머지 3대 산업은 포괄적인 의미로 볼 때 모두 IT산업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지역 IT산업은 국내 최고의 IT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주축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등 대학과 벤처기업이 협력해 상생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지역 연구계에서는 ETRI의 정교일 융합보안그룹장과 김승환 u헬스 인포매틱스팀장이 차세대 IT R&D 주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교일 그룹장은 IMT2000 시스템 적용을 위한 정보보호 알고리듬을 설계·개발한 데 이어 전자보증서 기반의 공개키 인프라 시스템을 개발, 국내 정보보호 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또 차세대 IC카드는 물론이고 3세대 이동통신을 위한 USIM 칩세트 개발 등을 통해 활발한 연구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김승환 팀장은 입고 다니는 컴퓨터 ‘웨어러블 컴퓨터’로 유명한 바이오셔츠를 지난해 개발, u헬스 기술의 장을 연 인물로 손꼽힌다. 이 밖에도 건강관리를 위한 생체정보 분석 기술을 개발하고 CT 영상에서 폐결절 자동 추출 기술을 개발하는 등 IT와 BT를 접목한 융합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AIST에서는 유회준·최경철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의 활약이 눈부시다.
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 DRAM 설계실장을 지낸 유회준 교수는 98년부터 KAIST에 몸담아 시스템온칩(SoC)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대용량의 메모리가 집적된 새로운 SoC 구조인 RAMP(RAM Processor)를 개발한 데 이어 2000년부터는 네트워크온칩(NoC) 기술을 개발, 미래의 SoC 플랫폼으로서 NoC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했다. 2001∼2005년에는 학교에 반도체설계자산연구센터(SIPAC)를 설립, 국내 대학 및 주요 반도체 회사와 국내 SoC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에 앞장서기도 했다.
최경철 교수는 올 초 PDP의 과대 전력 소모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고효율 발광 핵심 원천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는 인사로 떠올랐다. 이 기술은 PDP의 발광 효율을 현재보다 4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정보디스플레이학회에서 초청 논문으로 발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혁재 ICU 공학부 교수는 ETRI 무선방송기술연구소장 출신으로 CDMA 시스템의 성공적인 상용화 개발을 이끈 핵심 주역이다. 2000년 ICU로 자리를 옮긴 이 교수는 기존의 R&D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통신 교육과 기초 연구를 수행하면서 한국방송공학회장, 주파수심의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파교육연구센터를 구축, 전파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IT산업 지원 분야에서는 대전첨단산업진흥재단의 전영표 소프트웨어사업단장·김영우 고주파부품사업단장·남궁인 지능로봇사업단장 3인방이 활발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벤처 CEO 출신인 전 단장은 IT CEO 전략커뮤니티를 결성하고 첨단기술 사업화 시범 사업을 실시하는 등 산·학·연 정보 및 기술 교류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 IT산업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하이닉스·텔슨전자 출신인 김 단장은 산업계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덕와이어리스밸리 구축에 따른 비전을 제시하고 고주파 부품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핵연료 교체 특수로봇 설계가 출신으로 한국전력 기계설계처 부장을 지냈던 남궁 단장은 지능로봇센터 완공을 계기로 R&D 중심의 지역 로봇산업을 시장 중심의 로봇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전 IT산업 문제
대전지역 IT산업은 국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에서 쏟아져 나온 우수 연구인력이 창업에 나서면서 대덕밸리가 형성됐고 이를 모체로 오늘의 대덕연구개발특구가 탄생했다. IT산업 자체만 두고 볼 때 임베디드산업을 내세운 대구나 광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광주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어느 특화분야를 내세우기 힘들다. 포괄적인 의미의 IT산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SW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업 주류=대전지역 IT·SW기업은 400여개로 추정된다. 대전첨단산업진흥재단이 지난해 조사한 ‘대전지역 IT·SW기업 일반 현황’ 자료에 따르면 414개 응답 업체 중 SW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기업이 240개로 전체의 58.0%를 차지하고 있다. 정보통신기기업체와 정보통신서비스업체는 각각 25.8%(107개), 16.2%(67개)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전체 응답 업체의 지난해 매출액 합계는 총 8797억원으로 집계됐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서비스업이 38.5%(3063억원)로 가장 많았고 SW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업 38.5%(3057억원), 정보통신기기업 23.0%(1827억원) 순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결과는 업체별 평균 매출액 측면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서비스업 66억5900만원, 정보통신기기업 25억200만원, SW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업 17억6700만원 순으로 두드러진다. 기업 수자만 놓고 볼 때 SW 및 컴퓨터 관련 서비스업이 많지만 매출액 측면에서는 정보통신서비스업이 단연 우세인 셈이다.
◇‘선택과 집중’ 필요=대전지역 IT산업은 지난 10여년간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코스닥 상장기업이 13개나 되고 1000억원대 매출을 바라보는 기업도 조만간 탄생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 성장과는 달리 대전지역을 대표할 만한 특화업종이 없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또 제각기 다른 업종의 사업이다보니 동종 업계에서 밀접하게 발생할 수 있는 연계 및 협업 등의 파급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덕특구가 ‘백화점 나열식’의 IT 벤처산업군으로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차려놓은 음식은 많지만 막상 이 중에서 최고를 고른다면 선택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치다. 이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기술력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 대덕특구 IT 벤처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선택된 산업군을 대상으로 보다 집중적인 육성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IT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대전시와 대덕특구지원본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전문기업/이머시스
‘세계 일류의 디지털 사운드기업으로 거듭난다.’
이머시스(대표 김풍민 www.emersys.co.kr)는 대전에 뿌리를 둔 국내 대표적인 입체음향 솔루션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는 10년 이상의 오디오 연구 경력을 갖춘 전문 연구인력이 전체 직원의 절반이나 될 정도로 막강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자체 음향 스튜디오인 ‘사운드파크’는 국내 최고 수준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 능력을 갖췄다. 특히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모바일폰 시장에서 빠른 성장세를 기록, 세계적인 사운드기업인 미국 SRS랩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군은 크게 3대 분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3D 사운드 솔루션은 듀얼 스피커 및 이어폰에서도 현장감 있는 음향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는 세계 수준의 입체음향 솔루션이다. 이동단말기부터 디지털 TV·반도체·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 용도별 맞춤형 솔루션으로 제공한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30∼4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이머시스는 내년에 두배 수준인 8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어폰·헤드세트에서 스피커 재상과 같은 사운드를 구현해 편안한 음질을 구현하는 사운드 외재화 솔루션과 반향 및 잡음을 제거해 입체적 음질을 제공하는 간섭 제거 솔루션도 이머시스만의 차별화된 핵심 기술력으로 탄생했다. 이미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표적인 휴대폰 생산업체와 디지털가전회사 등이 이머시스의 솔루션을 앞다퉈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ETRI와 공동으로 5.1채널 정보를 2채널로 복원하는 AV 코덱 솔루션을 개발, 세계 표준화를 추진 중이다. 단순한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오디오 세계 표준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오디오 시장 변화 흐름에도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다.
세계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애플이 휴대형기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윈도 운용체계(OS)에 큰 변화가 불어닥칠 것에 대비해 대응 기술 마련을 신속하게 하고 있다. 잡음 제거 기술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돌비나 음원칩 개발로 인지도를 높인 야마하보다도 앞서 우수한 기술력과 다양한 제품군을 바탕으로 세계 오디오 시장의 본격적인 재편 흐름에 적극 대응해 나가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국내 LCD TV업체는 물론이고 미국·일본·대만·중국 등 외국 유명 LCD TV 칩회사와 음향 솔루션 공급 계약을 하고 본격적인 수출 채비를 마쳤다.
이 회사는 내년에 큰 도약을 꿈꾼다. 올해(40억원)보다 네배 이상 성장한 160억원대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꿈을 현실로 일궈내기 위한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김풍민 사장은 “토털 사운드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소비자 감성 중심의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 일류의 디지털 사운드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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